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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남원 선원사 철조여래좌상

sky_lover_ 2021. 2. 26. 07:19

- 약사전

 

남원(南原) 선원사(禪院寺)는 남원 시내 선원사거리 부근에 있습니다.

 

절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헌강왕 1년(875년)에 창건했다고 합니다. 도선국사가 남원의 지형을 살펴보니 주산(主山)인 백공산, 곧 지금의 만행산의 지세가 객산(客山)인 교룡산에 비해 너무 허약하므로 교룡산과 같이 맞추어줄 필요가 있어 지세를 북돋고자 선원사를 비롯한 대복사(大福寺)와 만복사(萬福寺)를 창건했다는 말이 전합니다.

 

창건 당시 사찰 영역이 지금의 남원중앙초등학교 일대까지 이르는 큰 규모로, 당우(堂宇)가 30여 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만복사에 버금가는 대찰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만복사와 함께 불탔습니다. 그 후 부사 김세평(金世平)이 노계소(老稧所)와 신도계(信徒契) 등과 협의하여 영조 31년(1755년)에 약사전(藥師殿)과 명월당(明月堂)을 재건하였습니다. 이때 정유재란 때의 화마(火魔)에도 살아남은 고려 시대 철불을 약사전에 모셨습니다. 이로써 선원사는 다시 남원 굴지의 사찰이 되었습니다. 

 

선원사는 해방 전까지만 해도 사찰 소유 토지가 22,000평이 넘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큰 피해를 보았으며, 이후 사세가 급속히 위축되어 사찰 소유의 여러 재산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 철조여래좌상

 

철조여래좌상은 고려 시대 철불입니다. 높이가 1.1m로, 등신대(等身大) 크기입니다.

 

불상은 장방형의 머리와 약간 긴 듯한 목, 네모난 상체, 넓게 퍼진 듯한 삼각형의 하체로 되어 있습니다. 법의는 통견(通肩)이고, 자세는 가부좌(跏趺坐)를 하였습니다.

 

- 철조여래좌상

 

머리카락은 나발(螺髮)이고, 육계(肉髻)는 낮고 둥급니다. 육계 윗부분에 정상 계주(髻珠)와 머리와 육계가 닿아 있는 곳에 중앙 계주가 있습니다.

미간(眉間)에 있어야 할 백호(白毫)가 없고, 눈썹은 마치 펜으로 그린 듯이 예리하며, 눈덩이는 약간 부풀어 올랐고, 눈은 가늘게 떴습니다. 코는 오뚝하고, 양 볼은 약간 팽창되었으며, 입술은 굳게 다물었습니다. 양 귀는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 철조여래좌상

 

목에 삼도(三道)가 있습니다. 가슴 부위는 밋밋하여 입체감이 덜합니다.

 

법의에서 V자 형식으로 옷깃을 여민 모습이 매우 특이합니다. 옷깃 가장자리가 한복과 같이 다른 천으로 덧댄 듯한 모습을 하였습니다. 옷 주름은 과장되게 표현되었습니다.

 

- 철조여래좌상

 

지금 광배와 대좌는 없어지고 불상만 남았습니다. 불상의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웠는데, 지금의 손은 근래에 새로이 만들어 끼운 것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조성 배경 등은 불상과 관련되는 명문이나 문헌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철불들이 그렇듯이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고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 은근히 마음이 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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