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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내판
울산 지역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태실(胎室)을 찾아갑니다. 경숙옹주(敬淑翁主)의 태실입니다.
울산과학기술원 후문 쪽으로 가다 보면, 도롯가에 경숙옹주의 태실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길을 따라갑니다.
- 멀리서 바라본 태봉산
산 쪽으로 가는 길에서 자그마한 산이 보입니다. 경숙옹주의 태실이 있는 태봉산입니다.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신 곳입니다. 예로부터 왕실에서는 왕실의 번영과 왕실 자손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하기 위해 전국에 이름난 산을 찾아 태실을 만들고 태를 묻었습니다. 이러한 산을 태봉산(胎封山)이라 합니다.
태실은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산의 높이가 100m 조금 넘으니, 그다지 높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이 조금 가파릅니다.
- 태실로 가는 도중 뒤돌아본 길
태실이 있는 곳까지는 논 사이로 나 있는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 안내판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초입에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쪽으로 올라갑니다.
- 태실로 가는 도중에 있는 무덤
조금 올라가다 보면 무덤이 있습니다. 망주석 옆을 지나 무덤 뒤쪽으로 올라갑니다.
- 안내판
무덤에서 조금 올라가면 안내판이 있습니다. 여기부터는 올라가는 길이 조금 가파릅니다.
- 올라가며 바라본 태실비
오르막길을 한동안 오르면 산꼭대기에 닿습니다. 이곳에 태실비(胎室碑)가 있습니다. 태실비는 태실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태실 앞에 세운 비석입니다.
- 태실비 앞에 있는 무덤
태실비 앞에 무덤이 하나 있습니다. 밀양 박씨 여인의 무덤입니다.
한 생명의 죽음을 뜻하는 무덤과 한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태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삶의 시작과 끝이 공존합니다.
- 태실비
태실비는 소박합니다.
형태는 지붕돌과 몸체가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높이는 107cm, 몸체 높이는 75cm, 너비는 45cm, 두께는 19cm입니다.
- 태실비 앞모습
태실비 앞면에 '왕녀합환아기씨태실'(王女合歡阿只氏胎室)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합환'(合歡)은 태실 주인의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태실비 옆모습
태실비의 옆모습입니다.
- 태실비 뒷모습
태실비 뒷면에는 비를 세운 때를 기록하였습니다. '성화이십일년팔월초육일입'(成化二十一年八月初六日立)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 태실비
비에 새겨진 기록으로 태실의 주인은 경숙옹주(敬淑翁主)이며, 조선 성종 16년(1485년) 8월 6일에 태실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태실비
경숙옹주(敬淑翁主, 1483~?)는 조선 제9대 임금 성종(成宗)의 다섯째 딸이며, 어머니는 명빈 김씨(明嬪 金氏)입니다. 여천위(驪川尉) 민자방(閔子芳)과 혼인하여 아들 민희열(閔希說)을 두었습니다. 그녀의 무덤은 경기도 부천시 작동 산 57-2에 민자방의 무덤과 나란히 있습니다.
- 태실비
태실은 1970년대 초에 도굴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태실의 유물인 백자 태항아리 2점과 지석(誌石) 1점을 찾아 소장하고 있습니다.
지석에는 '성종 14년(1483년) 8월 9일 축시(丑時)에 태어난 합환 아기씨 태를 성종 16년(1485년) 8월 6일에 묻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태실비
지금 이곳은 태실은 사라지고 태실비만이 남았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그림자가 길게 땅에 드리웁니다. 가끔 불어오는 겨울바람이 쌀쌀합니다. 결코 답을 알 수 없는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맴돕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