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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진립 장군 신도비


- 최진립 장군 신도비


경주 이조리 남산 기슭에 최진립 장군 신위를 모신 용산서원(龍山書院)이 있습니다. 그 입구에 비각 하나가 서 있는데, 영조 18년(1742년)에 세워진 비각입니다. 그  비각 안에는 영조 16년(1740년)에 세운 최진립 장군 신도비가 있습니다.


- 귀부


최진립 장군 신도비 귀부 모습입니다. 


귀부는 태종무열왕비 귀부와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일부 신라고고학 전공자들은 이 귀부가 통일신라 시대 귀부로, 조선 시대에 재사용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 귀부 머리


귀부 머리입니다. 날카로운 앞니와 송곳니가 튀어나와 있습니다.



- 귀부 머리


머리 위쪽에 동심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심원 뒤쪽에 목주름으로부터 올라오는 3줄기의 꽃문양이 있습니다.  



- 귀부 목


귀부 목 아랫부분에는 윗부분과 대칭되게 꽃문양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운데 꽃문양은 2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 귀부 왼쪽 앞발


귀부 앞발은 앞을 향하였고, 몸체보다 조금 작습니다. 발톱이 5개입니다. 



- 귀부 오른쪽 뒷발


귀부 왼쪽 뒷발은 뒤로 향하고 있지만, 오른쪽 뒷발은 앞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발톱은 4개입니다.



- 귀부 꼬리


귀부 꼬리입니다. 신라 시대 귀부의 꼬리처럼 통통하지 않고 가늡니다.


- 귀부 등


귀부 등에 있는 귀갑문은 그다지 치밀하지 못 합니다. 그리고 일렬로 배치되어 있어 귀갑문이 서로 만나는 부분의 여백이 마름모꼴 문양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 귀부 등


귀부 등 가장자리에 톱니 모양의 문양이 있습니다.



- 비좌 아랫부분의 등


비좌 아랫부분의 등에 연판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하나가 작고 형식적이며 평면적입니다.


- 비좌 옆면


비좌 옆면에 사각의 구획을 두었고, 그 안에 안상무늬가 있습니다. 



- 안상무늬


안상무늬는 좌우가 길고 상하가 좁은, 옆으로 길쭉하게 늘어져 있으면서 굴곡이 있는 형태입니다. 이런 형태의 안상무늬는 통일신라 시대에는 볼 수 없고, 조선 시대 그것도 중기 이후에 볼 수 있습니다.


- 이수 앞면


이수 앞면에 두 마리 용이 서로 등을 지고 웅크린 자세로 여의주를 서로 받쳐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형식적입니다.


전액에는 '정무공최선생신도비(貞武公崔先生神道碑)'라 적혀 있고, 비신의 맨 위쪽에 '유명조선국충신증병조판서행(有明朝鮮國忠臣贈兵曹判書行)'라 적혀 있습니다.


- 이수 옆


이수 옆면 모습입니다. 세 마리 용이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 이수 뒷


이수 뒷면은 앞면과 비슷합니다.


2. 태종무열왕릉비



- 태종무열왕릉비


최진립 장군 신도비의 모본(模本)이 된 태종무열왕릉비입니다. 비는 661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진립 장군 신도비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 귀부 머리


귀부 머리입니다. 잇빨이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 귀부 머리


귀부 머리 위쪽에 테두리에 화염문과 유사한 장식이 있는 동심원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의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목주름 쪽으로 뻗어나가는 3단의 꽃문양이 있습니다.


- 귀부 목


목 아래쪽에는 위쪽과 대칭되는 꽃문양이 있습니다. 최진립 장군 신도비 귀부와는 방향이 서로 반대입니다.


- 귀부 오른쪽 앞발


귀부 앞발은 앞을 향하였고, 발톱은 5개입니다. 



- 귀부 오른쪽 뒷발


귀부 뒷발은 뒤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발톱은 4개입니다.



- 귀부 꼬리


귀부 등의 가장자리에 톱니 문양이 있습니다. 귀부 꼬리는 통통합니다.



- 귀부 등


귀갑문은 치밀하며, 엇갈려 배치되어 있어 서로 만나는 부분에 빈틈이 없습니다.



- 비좌 아랫부분의 등


비좌 아랫부분의 등에 있는 연판문은 크고 입체감과 생동감이 있습니다.



- 비좌 아랫부분의 등


연판문은 화려하며 입체감이 있게 돌출되어 있고, 연잎 끝이 첨형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 이수 앞면


이수 앞면에 두 마리 용이 서로 등을 지고 웅크린 자세로 여의주를 서로 받쳐들고 있습니다. 용의 모습이 생동감이 넘칩니다.



- 전액


전액 모습입니다. 


김인문(金仁問)의 글씨로 전하는 '태종무열대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 이수 옆면


이수 옆면입니다. 세 마리 용이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 이수 뒷면


이수 뒷면입니다. 앞면과 비슷하나 전액이 없습니다.


3. 김인문 묘비 귀부



- 김인문 묘비 귀부


김인문 묘비는 효소왕 4년(695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귀부 머리


귀부 머리에 앞니가 돌출되어 있습니다.


- 귀부 머리


귀부 머리 위쪽에 동심원이 없습니다. 



- 귀부 목


귀부 목 아래쪽 모습입니다.



- 귀부 앞발


귀부 앞발은 앞으로 향하였고, 발톱은 5개입니다.



- 귀부 뒷발


귀부 뒷발은 뒤로 향하였으며, 발톱은 5개입니다. 



- 귀부 꼬리


귀부 꼬리는 통통합니다.


- 귀부 등


귀갑문은 치밀하며, 엇갈려 배치되어 있어 서로 만나는 부분에 빈틈이 없습니다.


- 귀부 등


비좌 아랫부분의 등에 있는 연판문은 크고 입체감과 생동감이 있습니다.


- 비좌 옆면


비좌 옆면에 안상무늬는 없습니다.


- 귀부 등


비좌가 놓인 모습이 매우 입체감이 있습니다. 귀부 등 가장자리에 톱니 문양이 있습니다.


4. 서당화상비 귀부



- 서당화상비 귀부


서당화상비 귀부는 머리가 없어졌습니다. 조성 시기는 9세기 초로 추정됩니다.



- 귀부 앞모습


귀부는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앞발은 앞으로 향하며, 발톱은 5개입니다.



- 귀부 뒷모습


귀부 뒷발은 뒤로 향하며, 발톱은 5개입니다.



- 귀부 등


귀부 등의 귀갑문은 마모가 심해 잘 알아볼 수 없습니다. 



- 비좌


비좌 옆면과 비좌 아랫부분 등에 연판문이 있습니다.



- 비좌


좀 더 자세히 본 연판문 모습입니다.


- 비좌


다른 각도에서 본 연판문 모습입니다.



- 비좌 아랫부분의 등


비록 귀부의 크기는 작지만, 연판문은 크고 입체감이 있습니다.


5. 결론


최진립 장군 신도비의 이수는 태종무열왕비의 이수를 거의 그대로 모방했습니다. 이처럼 이수를 태종무열왕비의 이수를 거의 그대로 모방하였으니 귀부도 같이 모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귀부도 겉모습은 태종무열왕비의 귀부와 비슷해 보이지만, 통일신라 시대 귀부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따라서 최진립 장군 신도비의 귀부는 태종무열왕비의 귀부를 모방한 조선 시대의 귀부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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