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충익사 모과나무 경남 의령 충익사(忠翼祠)는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던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1552~1617) 장군과 그 휘하 장병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 뜰에 오래된 모과나무가 있습니다. 충익사 모과나무입니다. - 충익사 모과나무 모과나무는 원래 중국에서 자라던 나무로,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전역에서 관상 또는 열매를 얻기 위해 심었습니다. 봄에는 선홍색의 꽃이 피며, 가을에는 노란색의 둥근 열매가 열립니다. 열매는 특이한 향기가 있는데, 과실주로 담그거나 차로 만들어 마십니다. 말린 것은 한방에서 '목과(木果)'라 하여 약재로 쓰입니다.예부터 사람들은 모과를 보고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먼저 못생긴 열매를 보고 한 번 놀라고, 향기로운 향에..

- 충렬사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에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 전투에서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1551~1592)을 비롯한 92명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인 충렬사(忠烈詞)가 있습니다. 충렬사는 선조 38년(1605년)에 동래부사 윤훤(尹喧)이 동래읍성 남문 밖 농주산(弄珠山, 현재 동래경찰서 자리)에 송상현의 위패를 봉안한 송공사(宋公祠)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이 시초입니다. 인조 2년(1624년)에 선위사(宣慰使) 이민구(李敏求)의 청으로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짐에 따라 송공사는 충렬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 소줄당 소줄당(昭崒堂)입니다. 안락서원의 강당으로 쓰였던 건물입니다. '소줄당(昭崒堂)'이라는 당호는 한유(韓愈)의 에서 유래합니다. 중에 '소호일월(昭乎日月) 부족위명(不..

- 대법사 밀양 덕암산 북쪽 능선에 비구니 절인 대법사(大法寺)가 있습니다. 이곳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백하암(白霞庵)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사명대사가 강화정사(講和政使)로 일본을 다녀온 뒤인 160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선영(先塋)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조그마한 초가를 지어 '백하난야(白霞蘭若)'라 하였습니다. 사명대사는 이곳에서 선대의 명복을 빌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명대사는 그해 10월에 묘향산으로 길을 떠났고, 1610년에 합천 해인사 홍제암에서 입적하였습니다. 사명대사가 입적하자 밀양 유림에서는 대사의 충(忠)이 지극히 커서 불법으로 그 공훈을 보답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여 백하난야 옆에 사당을 짓고 표충사(表忠祠)라 하였습니다. 그 후 1839년에 사당이 영정..

- 진덕문 김해 원동(院洞)마을은 대동면(大東面)에서 교통이 가장 불편한 외진 곳이지만, 주변에 높지 않은 산들이 감싸고 있어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이곳에 조선 시대 유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이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낙향한 후 18년간 후학을 가르친 산해정(山海亭), 즉 신산서원(新山書院)이 있습니다. '원동'(院洞)이란 지명도 '신산서원 부근에 형성된 마을'에서 왔습니다. 산해정의 대문은 진덕문(進德門)입니다. - 유위재 서재(西齋)인 유위재(有爲齋)입니다. - 환성재 동재(東齋)인 환성재(喚醒齋)입니다. - 산해정 산해정의 창건 연대는 중종 25년(1530년)으로 알려졌지만, 17세기 중반에 이뤄진 연보(年譜) 이외에 다른 근거 자료가 없습니다. 남명..
- 인곡리 모과나무 의림사 대웅전 오른편 언덕 쪽 삼성각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모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인곡리 모과나무'라고 하는 나무입니다. 수령은 약 250년이나 되었으며, 키가 10m에 이릅니다. 그리고 가지들이 옆으로 퍼져 나가 그 위용이 대단합니다. 이쯤 되면 나라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과나무 가운데 가장 큰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인곡리 모과나무 모과나무는 본래 중국이 원산지이며,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전역에서 과수나 관상용으로 심어왔습니다. 봄에 연분홍색 꽃이 피며, 가을이 되면 노란 열매가 맺습니다. 열매는 그 향기가 그윽하여 차나 술로 담그기도 하며, 기관지 천식 등의 약재로도 쓰입니다. 이처럼 향기가 좋다 보니 열매를 실내에 놓아두기도 합니다. - 인곡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