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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창녕 광산서당

sky_lover_ 2017. 4. 2. 09:07

-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리(光山里)는 유어면의 남쪽 지역에 있습니다. 이곳은 남지읍 시남리, 장마면 신구리, 창녕읍 외부리와 경계하고 있습니다. 

광산(光山)은 400여 년 된 마을입니다. 광정(光頂)이라고도 했는데, '빛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앞산 꼬장뱅이산(광정산(光頂山))이 꽃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화존(花存)에서 꽃(花)이 광(光)으로 음차되어 광존(光存)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곳 이름이 광정(光頂)이나 광존(光存)에서 광산(光山)으로 변했다 하겠습니다.

 

- 광산서당

이곳 대동마을 이강(梨岡)에 광산서당(光山書堂)이 있습니다.

광산서당의 전신은 광산서원(光山書院)입니다. 서원은 광산마을에 있었고, 양훤(楊喧, 1597~1650)을 배향했습니다. 정조 때(1795년)에 세워졌으나, 고종 때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습니다. <창녕현지>에 광산서원에 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남아 있습니다.

광산서원은 현의 남쪽 20리에 있으며, 진사 양훤을 배향했다. 정조 을묘년에 창건했고, 사액은 받지 못했다. (光山書院 在縣南二十里 進士楊暄 正祖乙卯創建 未賜額)

 

- 광산서당

광산서원이 철폐되고 나서 생긴 것이 광산서당입니다. 광산서당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사와 싸우기 위해 창녕 일대의 의병을 모아 출정한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세웠습니다.

전체적인 건물 배치는 '구(□)'자형을 보입니다. 대문채와 좌우에 관리사와 재실이 있고, 계단으로 이어져 1단 높게 서당이 있습니다. 서당은 정면 6칸, 측면 2칸입니다. 서고까지 겸비하였고, 후학을 가르치는 곳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건물 대들보에 "숭정기원무진후 정회기해 정월삼십일 유시 수주 이월이십일 유시 상량(崇禎紀元戊辰後 正回己亥 正月三十日 酉時 竪柱 二月二十日 酉時上樑)"이란 묵서가 있어 1899년에 건물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광산서당


건물 북쪽 면에 돌출된 누마루가 있습니다. 누마루 정면에는 '춘성루(春成樓)'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광산서당

누마루 측면 모습입니다. '광제헌(光霽軒)'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고, 한쪽이 완전히 트여 있습니다.

 

- 광산서당

건물 서쪽 면에 서고의 기능을 갖는 넓은 다락을 두었습니다. 이곳에 서책을 보관하였습니다.

 

- 광산서당

건물 후측면의 모습입니다.

광산서당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멋집니다. 게다가 서당 건물 바로 앞에 잘 생긴 배롱나무가 있습니다. 배롱나무에 꽃들이 앞다투어 빨갛게 피어나면,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질까요? 그때가 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란 말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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