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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포항 장기읍성

sky_lover_ 2014. 7. 29. 07:25

- 장기읍성 동문터

즈음 푹푹 찌는 더운 날씨로 한낮에는 밖에 잠시만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에 포항 장기로 향합니다. 장기읍성(長鬐邑城)은 장기면사무소에서 산등성이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있습니다.

성은 보통 평지에 있고, 지방의 관아와 민가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읍성은 일반적인 읍성과는 달리
평지가 아닌 동악산(252m) 동쪽 자락에 자리 잡았습니다. 말하자면 산성입니다.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이곳에 흙으로 처음 성을 쌓았고, 조선 세종 21년(1439년)에 돌로 다시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 동쪽 성벽

성의 형태는 마름모꼴에 가깝습니다. 둘레는 1.4km이며, 3개의 성문(동문, 서문, 북문)과 옹성
(甕城), 그리고 치성(稚城)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성벽 밖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동문 부근의 치성입니다.

지금 성 안에는 몇몇 민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향교와 동헌터가 있습니다. 이곳에 4곳의 우물과 2곳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연못은 매립되었고, 우물은 이전에 마을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 서문의 옹성

장기읍성에서 옹성의 형태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서문 쪽입니다.

- 서문

서문터의 모습입니다. 성문 위에 있었을 문루(門樓)는 없어졌습니다.

- 서문의 옹성 내부

성문을 지나 성벽 밖으로 나오면 옹성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러한 옹성은 치성처럼 성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키기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 동쪽 성벽 위에서 바라본 모습

동쪽 성벽 위에서 바깥쪽을 바라보면, 눈앞에 펼쳐진 평야 너머로 동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왜 이곳에 읍성을 쌓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리적 이점으로
장기읍성은 해안선 방어를 위한 군사적 거점의 역할을 했습니다.

- 장기향교

읍성 안에 장기향교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읍성 안의 모든 관아가 파괴되었고, 그때 향교도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서 향교를 복원하여 지금처럼 그 원형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 성벽 위에서 바라본 성 안의 모습

지금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장기읍성이 있는 이곳은 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외진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배지의 역할도 했습니다. 이곳에 유배를 온 인물 가운데 대표적 인물로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있습니다. 이곳이 그들에게는 처량한 유배지였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유배가 이곳의 학문적 수준을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우암 송시열의 경우 숙종 1년(1675년) 6월에 이곳에 유배를 와 서당을 세워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숙종 5년(1679년) 4월에 거제로 거처를 옮겼다고 합니다.
당시 이곳 사람들은
그를 흠모하여 그의 학문을 익혔고, 그가 떠나간 뒤에는 죽림서원(竹林書院)을 세워 그의 공덕을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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