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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동 마을 못
경남 밀양시 무안면(武安面)의 남동쪽 지역에 연상리(淵上里)가 있습니다.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이곳 지명은 상당동·고사동·호연동을 합칠 때 '호연(淵)'과 '상당(上)'에서 한 자씩 따서 연상리(淵上里)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자연 마을은 상당동(上堂洞), 중리(中里), 고사(高士)가 있습니다.

- 어변당 일대 배치도
상당동은 상당곡(上堂谷)이라고도 합니다.
1440년경에 박곤(朴坤)이 이곳에 어변당을 짓고 집 뜰에 못을 깊게 파서 고기를 길렀는데 그 고기가 용이 되어 상천하였다고 해서 상천(上天)의 '상(上)' 자 와 어변당(魚變堂)의 '당(堂)' 자를 따서 상당동(上堂洞)이 되었다고 합니다.
상동당 마을 앞쪽에 어변당(魚變堂)이 있습니다. 어변당은 조선 초기의 장수였던 박곤이 무예와 학문을 닦았던 곳입니다. 어변당에는 덕연서원(德淵書院)과 충효사(忠孝祠) 같은 건물이 함께 있습니다.

- 비각
덕연서원 바깥 길가에 비각(碑閣)이 있습니다.

- 삼문
덕연서원으로 들어가는 솟을삼문입니다. 솟을삼문 이름은 정리문(正履門)입니다.

- 덕연서원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덕연서원이 있습니다.

- 전사청
서원 앞쪽에 전사청(典祀廳)이 있습니다.

- 서재
전사청 뒤쪽에 서재(西齋)가 있습니다.

- 덕연서원
덕연서원은 1994년에 박곤(朴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박곤(朴坤, 1397∼?)은 밀성 박씨(密城朴氏) 태사공파(太師公派) 박언부(朴彦孚)의 11대손으로, 박의번(朴義番)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21세 때인 태종 17년(1417년)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였고, 관직은 이천현감, 공조참의, 호조참판, 한성판윤,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습니다.
세종 1년(1419년)에 최윤덕 장군을 따라 대마도 정벌에 나서서 큰 공을 세웠고, 세종 6년(1424년)에 첨절제사(僉節制使)의 명을 받아 북방 야인의 침입을 평정하고 육진을 설치하였습니다. 세종 7년(1425년)에 명나라 사신의 종사관으로 갔는데, 황제가 그의 사람됨을 보고 신하로 두고자 높은 벼슬을 내렸으나 고사하였습니다. 그 대신에 미인 세 명을 얻어 그곳에서 세 아들을 낳았고, 이들은 표(瓢) 씨의 성을 얻어 살았습니다.
세종 10년(1428년)에 삼남 지방에 왜구의 침범이 잦자 귀국하였으며, 이후 첨총제, 공조참의, 호조참의, 전라도 관찰사, 호조참판, 한성판윤, 예조참판을 역임하였습니다. 세종 22년(1440년)에 의금부 판사를 끝으로 낙향하였으며, 말년은 알려지지 않습니다.

- 덕연서원
서원 강당 당호는 쌍전당(雙全堂)입니다.
박곤의 '충효쌍전(忠孝雙全)', 즉 충성과 효도가 모두 온전함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당호를 '쌍전당'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 유재문
덕연서원에서 어변당으로 통하는 쪽문이 있습니다. 유재문(由齋門)입니다.

- 동백나무
어변당 옆 마당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동백나무 아래 땅에는 떨어진 동백나무꽃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 어변당과 적룡지
어변당(魚變堂)은 박곤 생가의 부속 건물입니다.
박곤이 40대 중반에 고향으로 내려온 1440년경에 지은 것으로 짐작됩니다. 효종 2년(1651년)에 중수하였고, 영조 30년(1754년)에 중건하였으며, 순조 14년(1814년)에 수리하였습니다. 지금 모습은 조선 후기의 것으로 짐작됩니다.
앞에 네모난 연못을 두었고, 그 폭에 맞추어 건물을 지었습니다. 2칸 대청과 온돌방 1칸을 두었으며, 대청의 옆면으로 출입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앞뒤로는 툇마루를 두었는데, 앞에만 계자난간을 둘렀습니다.

- 어변당과 적룡지(2012.6.10.)
어변당 앞에 있는 연못을 적룡지(赤龍池)라고 합니다. 이런 이름이 붙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박곤이 뜰에 연못을 파고 아침저녁으로 물고기에게 밥을 넣어주며 지성으로 길러서 부모님께 봉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물고기 한 마리가 붉은 비늘을 남기고 용이 되어 승천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이후부터 연못은 적룡지(赤龍池)라 하였고, 건물은 어변당(魚變堂)이라 하였습니다.

- 사당
어변당 옆쪽 뒤편에 사당 충효사(忠孝祠)가 있습니다.

- 은행나무
적룡지 옆에 박곤이 심었다는 500년 훨씬 넘은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지금 볼품이 없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약 50년 전에 벼락을 맞아 불에 탔습니다. 이 일로 은행나무는 거의 죽다시피 했고, 모습도 많이 상했습니다.

- 은행나무
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겨우 생명만 건진 은행나무는 새로 난 가지에 새싹을 하나둘씩 틔우고 있습니다.

- 은행나무
소재지: 경남 밀양시 무안면 연상리 394.
(2026.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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