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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례 마을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瑜伽邑)의 남쪽 지역에 가태리(佳泰里)가 있습니다.


이곳 지명은 자연 마을인 가태에서 나왔습니다. 옛날부터 명소가 많고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산이 크고 마을이 앞으로 번창한다는 뜻에서 아름다울 '가(佳)'와 클 '태(泰)' 자를 써서 '가태(佳泰)'라 하였습니다.

 

이곳은 비슬산(琵瑟山)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서쪽 사면(斜面)이 가태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달창저수지의 2할 정도가 속해 있습니다. 비슬산에서 흘러내린 천(川)에 의해 형성된 들판인 가태들이 있습니다.

 

자연 마을은 가태(佳泰), 구례(求禮), 남통(濫通), 석천(石泉)이 있습니다.

 

- 비각

구례 마을 앞에 비각이 있습니다.

 

비각 안에는 곽재우의 홍의장군 신도비(紅衣將軍神道碑)와 곽준의 충렬공 신도비(忠烈公神道碑)가 나란히 있습니다. 이 비는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고 하여 '땀 흘리는 신도비'라고도 합니다.

- 비각

 

비각 모습입니다.

 

- 비각

 

예전의 비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신도비도 손상되었습니다. 이후 신도비는 1957년에 정부가 주관하여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하였고, 유림에서 비각을 세웠습니다. 지금 비각은 2010년에 새로 지은 것입니다.

 

- 홍의장군 신도비

 

홍의장군 신도비입니다.

 

곽재우는 현풍 사람으로, 외가인 의령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32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선조가 답 내용에 불손한 면이 있다고 하여 합격을 취소시켰습니다. 이후 과거를 포기하고 향리에 은거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일 먼저 개인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의 모함으로 벼슬을 버리고 떠나갈 때 그에게 신 한 켤레와 말 한 필뿐이었다고 합니다. 사후 곽재우는 충익공(忠翼公)에 제수되었습니다.

 

- 귀부

 

신도비 귀부는 순박한 사람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 충렬공 신도비

 

충렬공 신도비입니다. 곽준은 곽재우의 부친과 6촌 간이라 합니다.

 

곽준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함양의 황석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그때 아들 이상(履常)과 이후(履厚)가 아버지의 곁을 지키다 살해되었습니다. 딸은 남편 유문호가 잡혔다는 말을 듣고 자결하였고, 며느리도 자결하였습니다. 충(忠)과 효(孝)와 열(烈)을 실천한 '일문삼강(一門三綱)'의 집안이었습니다.

곽준의 신도비는 현종 4년(1663년)에 처음 세워졌습니다. 원래 자리는 현풍읍 대리(大里)로, 현풍 곽씨(玄風郭氏)의 집성촌입니다. 이후 숙종 17년(1691년)에 가태리에 곽재우의 신도비를 세우면서 곽준의 신도비를 옮겨왔습니다.

 

소재지: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 584-6.

 

- 가태리 느티나무

 

비각 앞에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가태리 느티나무입니다.

 

- 가태리 느티나무

 

가태리 느티나무 모습입니다.

 

- 가태리 느티나무

 

수령 400여 년의 이 느티나무는 '곽재우 나무'라고 불립니다.

 

- 가태리 느티나무

 

수령: 400년.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3.98m.
소재지: 대구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 513-2.

 

(202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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