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모산리 느티나무
창녕 모산리(牟山里)는 대지면(大池面)의 중심 지역입니다. 이곳에 면사무소, 우체국, 농협 등이 있습니다. 모산(牟山)이란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산리 서쪽 대지초등학교 옆의 야트막한 야산 비탈에 보리방우(보리바우)로 불리는 바위가 있습니다. 보리알과 같이 자그마하면서도 둥글납작한 바위 수십 개가 밀집되어 있어 이 바위를 보리방우라 합니다. 보리방우(麥岩)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맥산(麥山)이라 하다가 후에 모산(牟山)으로 바뀌었고 합니다.
모산리 마을로는 모산(牟山)과 원동(院洞)이 있습니다. 모산 마을에 맥산재(麥山齋)가 있습니다. 이곳에 노거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모산리 느티나무입니다.
- 맥산재
맥산재(麥山齋)는 창녕 성씨(昌寧成氏)의 재실입니다. 맥산재 뒤쪽에 야트막한 야산이 있습니다. 이 야산 이름이 맥산(麥山)입니다. 창녕 성씨의 시조인 성인보(成仁輔)의 묘가 있습니다.
맥산재 서쪽에 석리(石里) 석동(石洞)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에 성(成) 부잣집으로 알려진 성씨 고가(成氏古家)가 있습니다. 성씨 고가는 북한 김정일의 처 성혜림이 어린 시절 보냈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맥산재
창녕 성씨의 시조가 된 성인보(成仁輔)는 고려조에 중윤호장(中尹戶長)을 지냈으며, 조정사(朝正使)로 개성에 갔다가 거기서 병을 얻어 죽었습니다.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그의 아들 성송국(成松國)이 효성이 지극하여 "내가 아버지 시신을 지고 고향까지 모시어 안장해야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나무로 질 것을 만들어 등에 시신을 지고 개성에서 창녕으로 향하였습니다.
천 리 길을 나선 지 여러 날 만에 지금의 대지면 초입인 시추말리(西靑萬里)에 있었던 청산원에 당도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처마 밑에 시신을 안치하고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밤새 눈이 내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시신이 없어졌고, 호랑이가 물어간 듯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눈 위에 난 발자국을 따라가 보니 지금의 맥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신이 있는 자리가 명당이었습니다. 호랑이가 아들의 효성에 감복하여 명당을 지목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성송국은 하늘이 주신 아버지의 유택(幽宅)이라 믿고 이곳에 묘를 썼다고 전합니다. 이것이 지금의 창녕 성씨 시조묘입니다.
- 모산리 느티나무
모산재 뜰 한쪽에 모산리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 모산리 느티나무
모산리 느티나무는 우람합니다.
- 모산리 느티나무
거대한 밑동이 나무의 오랜 연륜을 말해줍니다.
- 모산리 느티나무
나무는 늙어도 이렇게 기품 있고 품도 넉넉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한가요?
- 모산리 느티나무
수령: 600년.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7.5m.
소재지: 창녕군 대지면 모산리 504.
(2023.8.6.)
'노거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녕 원촌리 은행나무 (0) | 2023.08.11 |
---|---|
밀양 신월리 느티나무 (0) | 2023.08.10 |
창녕 석리 이팝나무 (0) | 2023.08.08 |
창녕 외부리 느티나무 (0) | 2023.08.07 |
밀양 가인리 느티나무 (0) | 2023.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