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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

부산 명지동 하신 마을 팽나무

sky_lover_ 2023. 6. 13. 06:15

- 신전항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鳴旨洞)은 명지도(鳴旨島)에서 명칭이 유래되었습니다. 명지도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에 '큰비나 가뭄이 오거나 큰바람이 불어오거나 하면 반드시 우는데, 그 소리가 어떤 때는 천둥소리, 북소리 혹은 종소리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섬에서 들어보면 그 소리가 멀어져서 들려오는 것 같으나 어디에서 울려 오는지는 알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명지도는 명호(鳴湖)라고도 하였습니다.


명지동은 낙동강 삼각주의 최남단에 있는 명지도와 순아도(명지의 북부를 이루는 모래톱으로 낙동강에서 운반된 토사가 형성한 하중도)에 해당합니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서쪽으로는 서낙동강이, 북으로는 평강천이 흐릅니다. 낙동강의 토사로 형성한 명지도와 순아도는 기복 없는 넓은 평지로 농경지로 이용되었습니다. 낙동강 하구에는 대마등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주로 갈대가 채취되던 곳이었으며, 한때 영남 전역에 공급할 정도로 소금으로 유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국 최대의 대파 생산지였기도 하였습니다. 자연 마을로 경등, 동리, 사취등, 상신, 새동네, 순아도, 신포, 영강, 진동, 진목, 전등, 조등, 중리, 중신, 평성, 하신, 해척 마을 등이 있었습니다. 이 마을들은 이곳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서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 신전항

명지도에 신전리(新田里)가 있었습니다. 신전(新田)은 '새(억새) 밭에 형성된 마을'을 뜻합니다. 신전(新田)이란 지명은 신전항(新田港)에 남아 있습니다. 신전리(新田里)에 상신(上), 중신(中), 하신(), 세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아래쪽 마을이 하신(下新) 마을입니다.

하신 마을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전하는 바가 없으나, 옛날부터 신호리(新湖里)로 건너가는 신호 나루터가 있었고, 거주 주민의 대부분이 3~4대째 살아가는 토박이들이었습니다. 명지동의 다른 마을과 같이 일찍부터 염전이 발달하여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신 마을이 있었던 곳은 명지도의 남쪽이 개간되기 이전까지는 명지도 남서단이었으나 지금은 서쪽 중앙부에 해당하며, 서낙동강의 동쪽 강변을 따라 있었습니다. 하신 마을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하신 마을이 있었던 곳에는 상업시설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 팽나무와 제당

 

하신 마을은 사라졌습니다. 대대로 살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곳의 노거수 팽나무와 제당에서 하신 마을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팽나무와 제당


제당은 남향을 하고 있습니다. 슬레이트 맞배지붕에 벽은 블록을 쌓아 시멘트로 마감하였으며, 문은 여닫이 두 짝으로 된 함석 문입니다.

 

제단 위에는 크기가 같은 두 개의 위패 함이 놓여 있습니다. 오른쪽 위패 함에는 '비문(碑文)'이라고 쓴 한지에 '당산신령신위(堂山神靈神位)'와 '천하대장신위(天下大將神位)'라 쓴 지방이 붙어 있고, 왼쪽 위패 함에는 '당산신위 좌안일(堂山神位 座案日)'과 '윤십월초파일유시오후오시(閏十月初八日酉時午後五時)'라 쓴 한지가 붙어 있습니다.

 

그 외에 제단 위에는 촛대 4개, 향로 2개, 정화수 그릇 2개가 얹혀 있습니다. 위패 왼편 벽에 할매와 할배의 옷을 한 벌씩 걸어 놓고 있습니다. 이 옷은 해마다 당산제를 할 때 무당이 새로 준비해 와서 묵은 것과 교체해 주었습니다.

 

- 팽나무와 제당

 

하신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사업 번창을 기원하며 당산제를 지냈습니다.

명지동 하신 당산제(鳴旨洞下新堂山祭)는 음력 3월 무당이 정한 날에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 2018-2번지에 있는 제당에서 1년에 한 번 마을의 안녕과 풍요 그리고 가정의 안정 및 사업 번창을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냈습니다. 이를 '처녀 할매 당산제'라고도 합니다.

하신 마을의 당산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세 가지의 구전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300여 년 전부터 마을의 부녀자들이 모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 할매제를 모셨다고 합니다. 둘째, 어느 해인가 태풍에 떠내려온 나무가 뿌리를 내려 지금의 당산나무(수령 약 150년)가 되었으며, 이 당산나무를 할매로 모시고 예전에 모시던 골대 할배와 합가를 시키면서 지금의 제당을 지었다고 합니다. 셋째, 어느 해인가 제주로 선정된 노인이 섣달그믐 제당에 머리를 길게 땋은 한 처녀가 앉아 있는 꿈을 꾸고는 더욱 당산나무를 신성하게 신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 구전에 의하면 당산제의 연원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 팽나무와 제당


당산제의 제수 준비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았습니다. 다만 용왕제에는 돼지머리, 팥죽, 산 닭을 썼습니다.

당산제의 날짜는 예전에는 음력 섣달그믐날 자정 무렵이었으나, 그 후에는 무당이 제관이 되면서부터 음력 3월 마을 부녀회장 등이 무당을 찾아가 날을 받았습니다. 당산제를 지내는 날이 되면 아침 6시 무렵에 마을 노인들이 제당 문을 열고 제단에 음식을 진설(陳設)하였습니다.

 

오전 8시에 무당이 주관하여 배를 타고 앞바다의 진우도(강서구 신호동의 앞바다에 길게 뻗어 있는 모래톱)로 가서 용왕제를 올렸습니다. 이때 각 가정에서는 마른 명태를 들고 한 해 동안 가정이 편안하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원하였는데, 마른 명태에는 호주의 성명을 쓴 한지를 실로 묶고 입에는 지폐를 물렸습니다. 용왕제 끝에 신기를 받은 무당이 각 가정의 그해 운을 말해 주었습니다.

 

용왕제가 끝나면 마을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이후 당산 할매제를 지냈습니다. 제가 끝나는 시각은 오후 6~7시 무렵이었습니다. 명지동 하신 당산제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음복하며, 제의 후 한 달간은 근신해야 했습니다.

 

- 하신 마을 비

 

당산나무인 팽나무와 제당 앞에 하신 마을 비가 있습니다. 이 비의 앞면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의 뒷면에는 하신 마을에 거주하는 모든 세대주 이름이 한 명씩 새겨져 있습니다.

 

하신(下新)마을

낙동강 끝자락에 삼각주 띠밭등 마을. 염전에서 만든 소금, 갈게 잡아 담근 젓갈, 돛단배 바람 없는 날엔 '고디' 끌고 살은 옛님. 쪽빛 하늘 넓은 바다 그물 펴고 김 양식하며 땀으로 이룬 터전과 농사로 이어졌고 푸른들 지켜선 정자나무 아래 가슴 열어 모인 이웃이어라.

1996년 9월 10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하신마을 주민 세움

 

팽나무와 제당

 

이곳 팽나무는 하신 마을의 당산나무입니다. 팽나무는 제당과 하신 마을 비와 함께 있습니다.

 

밑동

 

팽나무 밑동 일부가 썩어 비어 있습니다.

 

- 밑동

 

썩어 비어 있는 밑동 윗부분에서 뿌리가 자라 땅속으로 뻗어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나무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는 것 같아 처연합니다.

 

명지동 하신 마을 팽나무

 

이곳 주위 건설 공사가 진행될수록 팽나무는 풍전등화 신세입니다. 명지동의 다른 노거수들처럼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알 수 없습니다.

 

- 명지동 하신 마을 팽나무

 

마을도 사라졌고 마을 사람들도 떠났지만, 이 일대가 도시공원 지역으로 지정되어 나무만이라도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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