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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림폭포
기림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도통골 쪽을 향해 30여 분쯤 걸어 올라가면 보기만 해도 시원한 폭포가 있습니다.
이 폭포를 기림폭포라고 합니다. 폭포
물줄기가 떨어져서 커다란 물웅덩이를 만들었는데, 용연(龍淵)이라고 합니다. 폭포가 용연으로 떨어진다고 하여 용연폭포라고 하기도
합니다.
-
기림폭포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힘차게
아래로 흘러내리던 물줄기는 용연에 이르러서는 이내 잠잠해집니다. 그런데 떨어지는 물줄기도 물줄기지만 정적이 감도는 검푸른 물웅덩이가 왠지 더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 기림폭포
이 폭포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가 <삼국유사>의 '만파식적(萬波息笛)'조에 전합니다.
신라 신문왕 3년(683년) 5월 16일 감포 앞바다에서 용 한 마리가 나타나 왕에게 검은 옥대(玉帶)를 받들어 바쳤습니다. 왕은 감은사에서 하루를 묵은 후
지림사(祗林寺)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태자 이공(理恭, 후에 효소왕)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타고 달려와서 하례하였습니다.
태자는 옥대를 천천히 살펴보고는 아뢰었습니다. "이 옥대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그러자 신문왕이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라고 물었습니다. 태자는 "이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 보십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옥대의
왼편 둘째 쪽을 떼어서 시냇물에 넣으니 금세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곳은 이내 못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 못을 용연(龍淵)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이야기에는 흔히 어떤
상징성을 지닌 과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사기>에 태자 이공은 신문왕 7년(687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
당시에 태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야기
속의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삼국유사>에 이 이야기가 실렸을까요? 이것은 신문왕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한 방법으로 마치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처럼 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문왕이 왕위에 오른 후 반란 음모가 있었을 만큼 한동안 그의 위치가
불안하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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