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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단석산에 오르다.

sky_lover_ 2012. 3. 5. 07:31

- 신선사로 올라가는 도중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든 산길

처럼 공휴일을 맞아 쉬는 틈을 타서 경주 단석산을 다녀왔습니다.

단석산은 건천읍에서 산내면으로 가는 도중 도로 왼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산입니다.
삼국통일 이전에 이 산은 신라인들이 신성시한 오악(五) 가운데 하나로, 나라의 영산으로 모셔왔던 산입니다. 당시 신라인들은 경주 남산인 금오산, 토함산, 선도산, 소금강산, 단석산을 일컫어 오악이라 하였습니다.

단석산은 그 높이가 827m이니, 경주 부근에서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그러니 정상까지 오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 홀로 있는 민가로 향해 가는 산길

단석산 정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송선저수지를 지나 도로 왼쪽으로 들어가면 있는 우중골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도로를 따라 마을을 지나면 오덕선원이 있는데, 그 부근에 주차하거나, 아니면 시멘트 길을 따라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길이 끝나는 곳에 주차하면 됩니다. 이곳부터는 신선사로 올라가는 너른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면, 차 한 대 정도 주차할 만 공간이 있는 곳에서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갈림길에서 너른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신선사를 거쳐 단석산 정상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난 길을 따라가도 정상으로 갈 수 있습니다. 신선사를 거쳐 올라가는 길이 시계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신선사를 거치지 않고 가는 길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 길은 신선사를 거치지 않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 얼마간 올라가면, 홀로 있는 민가가 나타납니다. 비교적 너른 산길은 여기에서 끝이 나고, 이후로는 좁은 산길이 이어집니다.

- 민가를 지나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길

민가를 뒤로하고 계속 가면, 능선에 닿을 때까지 좁고 가파른 산길이 쭉 이어집니다. 이 길은 허가된 등산로가 아니라서 다니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러나 길을 찾아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 정상 부근에서 바라다본 모습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오르면 능선에 닿습니다. 능선에 오른 후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 계속 올라갑니다. 정상까지는 아직 멀었습니다. 쉬엄쉬엄 그렇게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제법 트인 곳이 나타납니다. 대략 1시간 남짓 올라왔나 봅니다.
이제 정상에 거의 다 왔습니다.

- 정상에서 내려다본 모습

마침내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경주와 건천 일대가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벽도산과 선도산, 그리고 금척리 고분군도 눈에 들어옵니다.

- 단석산 정상

산 정상에는 둘로 갈라진 바위가 있습니다. 단석(斷石)이라고 하는 바위입니다. 단석산(斷石山)이란 이름도 이 바위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 정상에 있는 단석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 바위는 김유신이 칼로 내리치면서 두 동강이 났다고 합니다. 마치 칼로 자른 듯 두 동강이 난 바위를 보면, 그런 이야기조차도 참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이 이야기와 관련된 것으로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진평왕 33년(611년) 김유신의 나이 17세 때 고구려·백제·말갈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쳐들어온 적을 평정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홀로 중악(中嶽, 단석산으로 추정) 석굴로 들어가 몸을 깨끗이 하고는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였다. "적국이 도가 없어 승냥이와 호랑이처럼 우리 영역을 침략하여 어지럽힘으로써 편안한 해가 없었습니다. 저는 한낱 미미한 신하로 재주와 힘은 헤아릴 수 없이 적지만 재앙과 난리를 없애고자 마음먹었으니 오직 하늘은 굽어살피시어 저를 도와주소서."

머문 지 4일째 되던 날 홀연히 한 노인이 거친 베옷을 입고 나타나 말하기를, "이곳은 독충과 맹수가 많아 가히 두려울 만한 곳인데, 귀한 소년이 여기에 와서 홀로 머물고 있음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말하였다. 김유신은 "어르신께서는 어디서 오셨는지, 존함이라도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노인은 "나는 머무는 곳이 없고 인연에 따라 가고 멈추며, 이름은 곧 난승(難勝)이다.”라고 말하였다.

공이 이를 듣고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그에게 두 번 절하고 나아가 말하였다. "저는 신라인입니다. 나라의 원수를 보니 마음이 아프고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기에 와서 만나는 것이 있기를 바랄 따름이었습니다. 엎드려 빌건대 어르신께서는 제 정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방술(方術)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공이 눈물을 흘리며 간청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니, 6~7번에 이르렀다. 노인이 이에 "자네는 어리지만 삼국을 병합할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또한 장하지 아니한가?"라고 하며, 곧 비법(秘法)을 가르쳐 주면서, "삼가 함부로 전하지 말게. 만약 의롭지 못한 데 쓴다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을 것이네."라고 말하였다. 말을 끝마치고 작별하였는데 2리 정도 갔을 때 쫓아가 그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보이지 않고 오직 산 위에 빛이 있어 오색과 같이 찬란하였다.

진평왕 34년(612년)에 이웃한 적이 점차 다가오자 공은 마음에 품은 장하고 큰 뜻을 더욱 분발하여 홀로 보검(寶劒)을 가지고 인박산(咽薄山, 또는 열박산)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향을 피우고 하늘에 고하여 빌기를 중악에 있을 때에 맹세한 것과 같이하였고, 거듭
"천관(天官)께서 빛을 드리워 보검에 영험함을 내려주소서."라며 기도하였다. 3일째 되던 날 밤에 허성(虛星)과 각성(角星) 두 별의 빛이 환하게 내려와 드리우더니, 검이 동요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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