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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
익산 금마면사무소와 왕궁리 오층석탑 사이 들판에 석상 2기가 있습니다. 고도리 석불입상입니다.
두 석상은 옥룡천(玉龍川)을 사이에 두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전설이겠지만, 서쪽의 석상은 남자이고 동쪽의 석상은 여자인데, 두 석상 사이로 옥룡천(玉龍川)이 흐르기 때문에 평시에는 떨어져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그믐날 밤 자정에 옥룡천 냇물이 꽁꽁 얼어붙으면 서로 건너와서 껴안고 그동안 맺혔던 회포를 풀다가 새벽에 닭이 울면 헤어져서 다시 제자리에 가 선다고 합니다.
- 고도리 석불입상(동쪽)
머리에는 높은 관과 네모난 갓을 썼고, 얼굴에는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이 있습니다. 목은 무척 짧아 얼굴과 몸통이 거의 붙었습니다. 몸통은 사다리꼴의 돌기둥 모양이며, 두 손을 배에서 가만히 포개었습니다. 도포 자락 같은 옷은 특별한 무늬 없이 선으로 표현되었습니다.
- 고도리 석불입상(동쪽)
고도리 석불은 불상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긴 기둥 같은 몸통에 네모난 얼굴, 가는 눈, 짧은 코, 옅은 웃음기를 담은 작은 입술 등은 장승과 같은 인상을 풍깁니다. 고려시대에 신체표현이 지극히 절제된 거대한 석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고도리 석불도 그러한 예 가운데 하나로 보입니다.
- 고도리 석불입상(서쪽)
조선 철종 9년(1858년)에 익산군수로 부임한 황종석(黃鍾奭)이 당시 고도리 석불이 쓰러져 방치돼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에 일으켜 세웠다고 합니다. 그때 세워진 비의 비문인 <군남 석불중건기(郡南 石佛重建記)>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마는 익산 구읍의 자리인데 동·서·북의 3면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다. 그런데 유독 남쪽만이 터져 있어 물이 다 흘러나가 허허(虛虛)하게 생겼기에 읍 수문(水門)의 허(虛)함을 막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 한다. 또 일설에는 금마의 주산(主山)인 금마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모양과 같은데, 말에게는 마부가 있어야 한다고 하여 마부로서 이 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금마산을 마이산(馬耳山)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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