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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sky_lover_ 2016. 8. 31. 06:42

-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산 미륵사지(彌勒寺址)에서 서북쪽으로 2.9km쯤 떨어진 삼기면 연동리 석불사거리 일대는 절터입니다. 연동리사지(蓮洞里寺址)입니다.


절은 600년경에 창건되어 12~13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금 절터에는 석불사와 석불초등학교, 그리고 도로가 들어섰습니다. 삼기면이란 이름은 이곳 삼기산(三箕山)에서 왔습니다. 삼기산은 인근의 미륵산이 우람하고 높은 데 비해 작은 새끼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서 '새끼뫼'라 한데서 왔습니다. 새끼뫼가 세끼메가 되었고, 이것이 다시 변해 '세(三) 기(箕) 뫼(山)', 즉 삼기산으로 되었다고 합니다.


-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이곳 석불사 대웅전에 백제시대 석불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이 있습니다. 이 석불은 정유재란 이후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가 1930년경 이 지역 주민의 현몽으로 발견됐다고 전설처럼 전해집니다. 워낙 거대한 석불이기 때문에 꺼내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누각을 세워 보존해오다가 지금의 석불사를 창건하면서 대웅전으로 옮겨 안치하였다고 합니다.


석불 머리는 결실되어 후대에 복원하였는데, 보기에 민망합니다. 그러나 불신과 광배, 대좌는 양호합니다. 대좌는 커다란 방형대좌(方形對坐)로, 그 위에 석불이 앉아 있습니다. 이 석불은 백제 석불 가운데 유례없는 걸작으로 꼽습니다. 이유는 사방을 깎아 만든 원각여래좌상(圓刻如來坐像)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백제 석불은 대부분 부조(浮彫) 형태이고, 원각여래좌상에 해당하는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은 조그만 곱돌을 깎아 만든 작은 불상입니다. 따라서 연동리 석불만이 백제 석불의 웅장하고 완전한 형태를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부분


석불의 어깨와 가슴은 넓고 당당합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고 엄지와 검지로 옷자락을 살짝 쥐었고, 가운뎃손가락과 약손가락을 구부렸습니다.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었습니다.


-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사진 출처: 문화재청)


법의는 두터운 통견으로, 상반신의 가슴에는 옷깃 사이로 비스듬히 휘어진 승각기와 띠 매듭이 있습니다. 옷자락이 별석(別石)으로 된 방형대좌로 이어져 상현좌(裳懸座)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현좌는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6∼7세기 불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 광배


광배는 별석으로 되어 있는데, 백제 불상 광배 가운데 가장 큽니다. 두광과 신광 바깥쪽에 6구의 화불과 화염 보주가 있고, 그 주변으로 소용돌이 모양의 불꽃무늬 있습니다.


- 두광


두광은 가운데에 16엽의 연꽃잎 무늬, 그 바깥쪽으로 햇살 무늬와 5조의 동심원 띠로 되어 있습니다.


- 화불


화불 주위에 소용돌이 모양의 불꽃무늬가 있습니다.


두광의 햇살 무늬와 소용돌이 모양의 불꽃무늬는 6세기부터 크게 유행했던 일광삼존불의 광배 형식이 백제식으로 정형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 호류지 금동석가삼존상(도판)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광배 형태는 일본 아스카시대(飛鳥時代) 불상에 영향을 주어 호류지(法隆寺) 금동석가삼존상에서도 같은 형태의 광배를 볼 수 있습니다.


-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이 석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합니다.


정유재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가 이끄는 한 무리의 왜군이 금마지역을 거쳐 수도 한양으로 진격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안개가 심하게 끼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왜장이 부하를 풀어 안갯속을 살펴보라고 지시하자 부하들이 돌아와서 "안갯속에 작은 절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 절에 모셔진 석불에게 왜군이 빨리 사라지기를 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안개의 원인이 그 석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한밤에 찾아갔는데, 밤인데도 석불은 광채가 나서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칼을 휘둘러 석불의 목을 베어버리자 안개가 걷혔고, 돌아와 진격하는데 갑자기 맑은 하늘에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 비에 조총이 무용지물이 되고 화약도 다 젖어 쓸모없게 되자 죽창과 낫 등으로 무장한 의병들이 왜군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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