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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수사터 삼층석탑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6년 출판)

<조선고적도보>로 우리 문화재 살펴보기 2번째입니다. 먼저 폐법수사 삼중탑(廢法水寺三重塔)으로 소개된 탑입니다.

탑은 폐허로 변한 절터에 서 있습니다. 뒤로는 가야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지금은 탑 바로 뒤로 성주에서 합천으로 넘어가는 59번 국도가 나 있으나, 당시는 다랑논만 보이는, 더는 오갈 데 없는 첩첩산중입니다.

이곳에 있었던 법수사(法水寺)는 산 너머의 해인사와 쌍벽을 이룰 만큼 큰 절이었습니다. 무려 1천여 칸이 넘는 건물과 딸린 암자만도 100개가 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 폐사되고 말았습니다.

- 법수사터 삼층석탑

현재 법수사터 삼층석탑의 모습입니다.

2층 기단부 위에 3층 탑신부, 그 위에 모서리가 깨진 노반이 차례로 올려져 있습니다. 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조선고적도보> 사진에서 보주처럼 보이는, 노반 위의 탑재가 없어졌고, 대신 다른 석재가 올려져 있습니다.

이 탑의 특징은 비교적 높직한 하층기단 면석에 면마다 3구의 안상 무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점입니다. 이 탑의 조성시기에 대해서는 법수사가 창건될 무렵에 세워졌다는 견해도 있고, 좀 더 늦은 시기에 세웠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참고로 법수사(法水寺)는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동방사터 칠층석탑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8년 출판)

다음은 성주읍 동북 칠층석탑(星州邑東北七層石塔)으로 소개된 탑입니다.

이 탑은 성주군 소재지의 동북쪽 33번 국도 변 들판에 있습니다. 책이 출간된 당시에는 절터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탑이 있는 위치로 이름 붙였습니다. 탑은 기단부 면석 아래로는 땅속에 묻혀 있지만, 탑신부는 비교적 온전합니다.

이 탑은 원래 9층탑이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을 보면 7층 지붕돌 위에 몸돌과 또 다른 탑재가 놓여 있습니다. 원래 9층탑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동방사터 칠층석탑

현재 동방사터 칠층석탑의 모습입니다.

이곳에 있었던 동방사(東方寺)는 신라 애장왕 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땅속에 묻혀있던 기단부가 지금은 완전히 노출되었습니다. 그런데 7층 지붕돌 위 몸돌 위에 있었던 탑재가 없어졌습니다.

탑은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보입니다. 위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1층 몸돌 남쪽 면에는 자그마한 감실 하나가 있고, 1층 지붕돌 네 모서리에는 밀양 소태리 오층석탑에서와 같은 도드라지게 새긴 연꽃무늬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감실이 있는 면을 제외한 나머지 1층과 2층 몸돌 면석마다 가운데기둥이 하나씩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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