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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봉정사
대구 달성에 남평 문씨(南平文氏) 본리세거지(本里世居地)가 있습니다. 이 마을은 인흥(仁興)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인흥 마을 첫머리에 수봉정사(壽峰精舍)가 있습니다.

- 대문 빗장둔테
수봉정사 대문의 빗장둔테는 두 마리 나무 거북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 마리 나무 거북의 등 한가운데에 각각 건괘(乾卦: ☰)와 곤괘(坤卦: ☷)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나무 거북에는 장수(長壽)와 음양의 조화를 비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수봉정사
수봉정사는 인흥 마을을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에 문영박(文永樸, 1880∼1931)의 인격과 학식을 기리고 학문과 교양을 쌓기 위한 교육 장소로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문영박은 아버지 문봉성(文鳳成)과 어머니 현풍 곽씨(玄風郭氏)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인흥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자는 장지(章之), 호는 수봉(壽峰), 본관은 남평(南平)입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상해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한 애국지사이자 서지학자(書誌學者)입니다.

- 소나무
수봉정사 앞마당에 잘생긴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 거북 문양
소나무 앞에 거북이 새겨진 돌이 있습니다.
이 돌은 집을 지을 때 냇가에서 주워 온 것으로, 그때 이미 거북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거북은 장수(長壽)와 화재 예방을 위한 비보(裨補) 목적으로 새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 우물
수봉정사가 있는 곳은 인흥사 대웅전 자리라고 합니다.
수봉정사 앞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습니다. 이 우물은 인흥사 우물로 전합니다.

- 수봉정사
수봉정사 모습입니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입니다.

- 현판
건물 정면에 '수백당(守白堂)'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현판은 우당(愚堂) 유창환(兪昌煥, 1870~1935)이 썼습니다. 현판 뜻은 '(청렴)결백을 지킨다'입니다.

- 수봉정사
수봉정사 마루 끝 위쪽에 '사백루(思白樓)'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현판은 명나라 서예가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의 글씨를 집자한 것입니다.
'사백(思白)'은 '결백을 생각한다'라는 뜻입니다. '백(白)'은 수백당(守白堂)의 '백(白)'을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문영박(文永樸)을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 마루 밑 문인석
수봉정사 마루 밑에 문인석이 놓여 있습니다.
이 문인석은 문영박의 묘에 세우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당시 여러 사정으로 묘에 세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 현판
수봉정사 뒤편에 '경유당(敬遺堂)'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현판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썼습니다. 현판 뜻은 '선현의 업적을 공경한다'입니다.

- 현판
수봉정사 뒤편에 '쾌활(快活)'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현판에 노완(老阮)이라 서명되어 있습니다. 이 현판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글씨입니다.
추사 김정희는 '완당(阮堂)'이라는 호를 즐겨 썼습니다. 그런데 유배에서 풀려난 60대 이후 노년에 접어들면서 스스로를 '늙은 완당(阮堂)'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노완(老阮)'이라 하기도 하였습니다.

- 수봉정사
수봉정사는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여기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도 하고, 일족(一族)의 모임을 열기도 합니다.
소재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401-2.
(20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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