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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심문
부산 기장향교(機張鄕校)는 세종 22년(1440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 및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세워졌습니다.
그 후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9년(1617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복원되었으며, 지금 남아 있는 경내의 건물 대부분이 이때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성전은 1974년에 보수되었습니다. 지금 건물은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서재(西齋)와 동재(東齋), 풍화루(風化樓), 신삼문(神三門)과 세심문(洗心門) 등이 있습니다.
외삼문(外三門)인 세심문(洗心門)은 3칸의 솟을대문입니다. 정면에 '세심문'(洗心門)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이해륜 영세불망비
세심문 옆에 이해륜 영세불망비(李海崙永世不忘碑)가 있습니다. 비는 이해륜(李海崙, 1874~?)이 기장향교를 위해 건물을 보수하고 유풍을 진작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 37년(1900년)에 세워졌습니다.
비 앞면에는 '행군수 이공해륜 영세불망비'(行郡守李公海崙永世不忘碑)라는 비제(碑題)와 함께 '예기를 고쳐 장만하니/ 선비들 기강을 받쳐 세우셨네/ 맑고 엄숙하며 온화하고 너그러워/ 동향에 자애하심을 남기셨네'(補修禮器 扶植士綱 淸肅溫裕 遺愛桐鄕)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뒷면에는 '경자년 오월 일 도훈장 김병규 도감 문상로'(庚子五月 日 都訓長 金秉奎 都監 文象魯)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 풍화루
세심문 뒤로 풍화루(風化樓)가 있습니다. 풍화루는 보통 누각이 대문의 기능을 겸하는 것과는 달리 대문의 기능을 세심문에 맡겼습니다. '풍화루'라는 이름은 지역의 풍속을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 풍화루
풍화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팔작지붕집입니다.
- 풍화루
풍화루 2층 천장 대들보에 용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대들보와 종종보 사이에 용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표정이 우스꽝스럽습니다.
- 명륜당
풍화루 뒤쪽에 있는 명륜당은 강학의 장소입니다.
- 명륜당
명륜당은 돌계단 위 높은 곳에 있습니다.
- 명륜당
명륜당 대청 뒤쪽 벽 위쪽에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현판
'명륜당'(明倫堂)이라 쓴 현판입니다.
- 명륜당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맞배지붕집입니다.
- 돌기둥
명륜당 앞에 돌기둥이 하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야간에 불을 밝혀주는 정료대(庭燎臺) 같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미심쩍습니다. 잔솔가지를 얹는 상석이 없어진 것은 아닐까요? 정료대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 기장향교
서재 쪽에서 바라본 기장향교 모습입니다. 왼쪽에 명륜당과 조금 멀리 동재가 보입니다.
- 서재
명륜당 앞마당 양측에 서재와 동재가 있습니다.
- 동재
서재와 동재는 교생들의 기숙사입니다.
- 신삼문
신삼문은 대성전의 대문입니다.
- 대성전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입니다. 독특하게 기둥의 1/3까지 초석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리고 양측 측면 벽에 방화벽을 잡석으로 쌓아서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였습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 기장향교
기장향교는 조선 시대에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