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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정사


부산 금강공원(金剛公園) 내에 금정사(金井寺)가 있습니다.


금정사가 있는 곳을 절골이라고 했다고 전합니다. 아마도 예전에도 이곳에 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약 1백여 년 전 이곳은 부산 동래부의 사형집행장이어서 인적이 드물었는데, 금우 스님이 이곳에 토굴을 짓고 원혼들을 달래주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신도들이 모여들어 1924년에 금정사가 창건되었고, 1954년 석주 스님에 의해 본격적인 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당대의 고승들인 한암(1876~1951)·효봉(1888~1966)·경봉(1892~1982) 스님 등이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당시 합천 해인사 가야총림이 문을 닫고 스님들이 남하하게 되자 그해 겨울 가야총림 방장 효봉 스님은 금정사에, 그의 제자 구산 스님은 진주 응석사에 머물렀습니다.



- 금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이곳 대웅전 내에 주존불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습니다.


- 금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불상은 머리카락이 나발이고, 머리 앞면 중심에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있습니다. 얼굴이 몸체에 비해 다소 크고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눈썹 사이에 백호(白毫)가 작게 표현되었습니다.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여 아래를 굽어보는 듯한 자세입니다. 


법의는 통견의를 입고 있는데, 오른쪽 어깨에 반달형 대의자락이 걸쳐져 있어 대의(大衣)와 상의(上衣)의 2중착의법(二重着衣法)으로 입고 있습니다. 수인은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하였습니다.


- 금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이 불상은 원래는 전북 완주군 고산면 용문사(龍門寺)에 봉안되었던 삼존불 가운데 하나였는데, 금정사 창건 때인 1920년경에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 불상과 함께 조성된 다른 불상 가운데 하나는 지금 전주 일출암(日出庵)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두 불상은 수인이 서로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어서, 금정사 불상이 아미타불로, 일출암 불상이 약사불로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가운데 봉안했을 석가불은 현재 어디 있는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습니다. 용문사 삼존불은 19세기에 용문사가 폐사되면서 흩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금정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2009년 11월 초 불상을 다시 금칠하고자 개금공방으로 보내기 전에 복장을 열었는데 다량의 복장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조성발원문, 후령통(喉鈴筒), 7종 8점의 경전류와 목판으로 찍어낸 수백 매의 다라니가 나왔습니다. 이때 나온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수화승(首畵僧) 혜희(慧熙) 등에 의해 1677년(숙종 3년)에 불상이 조성되었습니다.


후령통은 동·서·남·북이 쓰인 붉은 명주 보자기에 싸여 있었고, 후령통 안에 동제(銅制)의 가느다란 통 다섯 개(五寶甁)가 납입되어 있었습니다. 경전류와 다리니는 세종 연간인 1441년(세종 23년)에 간행된 <묘법연화경> 권4와 1429년(세종 11년) 판으로 간행된 <묘법연화경> 권4∼7, 1618년(광해 10년) 본 <묘법연화경> 권1∼3, 1537년(중종 32년) 본을 포함한 2종의 <금강반야바라밀경>, 혜각존자역결(慧覺尊者譯訣)의 <몽산법어(蒙山法語)> 등을 집성한 법어집과 게송집인 <자명총송(慈明聰頌)>, 그리고 <오정사판(烏井寺板) 다라니>, <일체여래전신사리보협진언사환합륜(一切如來全身舍利宝篋眞言四還合輪) 다라니>,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범자(梵字) 다라니>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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