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천사터 지광국사 현묘탑비 폐사지로 변한 법천사터는 황량하기만 하지만, 보석과 같이 빛나는 부도비가 하나 있어 덜 허전합니다. 이 부도비는 고려시대의 부도비 가운데 가장 정교하면서도 화려하여 보는 내내 끊임없는 감탄사와 함께 눈이 부십니다. 지광국사 현묘탑비(智光國師 玄妙塔碑)는 고려 선종 2년(1085년)에 세웠습니다. 지광국사가 입적하고도 십 년을 훨씬 더 지난 후에 세웠으니, 그 오랫동안 얼마나 온갖 정성을 다해서 만들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체 높이는 4.55m, 비신 높이는 2.95m, 너비는 1.41m입니다. 비신 옆면에 새긴 운룡문 조각과 귀부의 귀갑문 안에 새긴 '王'자 등이 특이합니다. 또한, 비면 가장자리에 새긴 보상당초문(寶相唐草紋)이나 이수의 네 귀퉁이에 단 귀꽃과 그리고..
- 법천사터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보통 절 입구에 있습니다.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깃발(幢)을 달게 되는데, 이 깃발을 거는 기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시켜주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라 합니다. 당간지주는 주로 돌로 만들었으며, 드물게 당간까지 남아 있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당간은 없고 당간지주만이 남아 있습니다. 법천사터 당간지주 역시 당간지주만이 남아 있습니다. - 법천사터 당간지주 법천사터 당간지주는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함께 이곳 절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간지주가 있는 주변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이 못됩니다. 바로 곁에 민가와 축사가 들어서 있어서 길에선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 또한 자꾸 후각을 괴롭힙니다. - 법천사터 당간..
- 원주 법천사터한 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가을날 찾은 법천사터는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텅 빈 절터가 발굴조사 때문인지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어 더욱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법천사(法泉寺)는 원래 '법고사(法皐寺)'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법천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창건된 이 절은 고려시대에 들어서 지광국사(智光國師) 때에 이르러 고개 너머에 있는 거돈사와 함께 당대 최고의 절로 발전하였습니다. 법천사는 이름 그대로 한때 진리가 샘물처럼 솟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후 폐사되어 지금은 정적만이 가득합니다. 법천사터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에는 마을의 내력을 말해주듯 수령이 수백 년이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