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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숭복사터 쌍귀부
경주박물관을 갈 때마다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게 되는 유물이 있습니다. 앞뜰에 있는 쌍귀부가 그것입니다.
이 귀부는 숭복사비(崇福寺碑)의 귀부입니다. 숭복사비는 최치원의 사산비(四山碑) 가운데 하나로, 사산비는 숭복사비를 포함하여 보령 성주사비, 문경 봉암사비, 하동 쌍계사비를 말합니다. 다른 비들은 건재한 데, 숭복사비만은 절과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귀부는 앞을 응시하면서 서로를 향해 약간씩 머리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헌강왕 12년(886년)에 왕은 최치원에게 숭복사 비문을 짓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치원은 헌강왕과 정강왕이 연이어 승하하는 바람에 한동안 비문을 짓지 못하다가 진성여왕 10년(896년)에 완성하였습니다. 숭복사비는 대략 이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 숭복사비는 없어졌으나 서산대사의 제자인 해안(海眼)이 최치원의 문집에서 네 비문을 뽑아 사산비명(四山碑銘)으로 정리한 덕분에 비문이 전하고 있습니다.
- 쌍귀부
귀부는 지난 세월을 반영하듯 머리 일부는 깨어져 나갔습니다. 귀부 얼굴 양옆으로는 수염이 귀 쪽까지 두텁고 길게 나 있습니다. 조각이 깊어 윤곽은 여전히 또렷합니다. 두 마리의 거북 등을 연결하여 비석이 놓일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바탕돌 위에 두 마리의 거북을 만들어 올린 쌍귀부입니다.
이런 형태의 귀부는 숭복사터 외에도 경주 인근 몇몇 절터에 있습니다. 가장 이른 것이 애장왕 1년(802년)에 조성된 무장사터 쌍귀부이고, 그다음이 숭복사터 쌍귀부입니다. 포항 신광면의 법광사터 쌍귀부와 경주 남산 창림사터 쌍귀부도 같은 형태이지만, 조성 시기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귀부의 머리는 용의 머리와 닮았습니다. 이러한 용두(龍頭)형의 모습은 고려시대 귀부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9세기 말에 조성된 숭복사터 쌍귀부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귀부는 짧은 목에 알이 굵은 구슬로 꿰진 목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등에는 두 겹으로 육각형의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세는 왼발로는 땅을 굳건히 딛고 오른발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입니다.
- 귀부의 비신 받침돌
귀부에서 비신을 받치는 돌을 따로 만들어 올려놓았습니다. 여기 옆면에는 안상무늬와 그 안에 천의 자락이 나부끼는 인물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 숭복사터에 복원된 숭복사비
사라진 숭복사비를 최근에 재현하여 숭복사터에 세워놓았습니다. 이수는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의 것을 본떴습니다. 비는 동탑 동쪽에 있는데, 아직은 왠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원래의 비는 금당터 동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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