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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경주 일정교

sky_lover_ 2011. 12. 13. 07:58

- 경주 일정교터

주 최부자집 부근 남천에 있는 월정교는 최근 복원작업을 하고 있을 만큼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월정교와 짝을 이뤘던 일정교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경주 일정교(日精橋)는 경주박물관 서쪽을 흐르는 남천에 있었던 다리입니다. <삼국사기> 경덕왕 조에 "경덕왕 19년(760년) 2월 궁궐 남쪽의 문천(蚊川, 남천) 위에 월정교(月淨橋)와 춘양교(春陽橋) 두 다리를 놓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 속의 춘양교가 바로 일정교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춘양교에서 일정교로 바뀌었을까요? 그것은 부근에 달을 상징하여 이름이 붙여진 월정교(月淨橋->)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월정교와 짝을 맞추다 보니 해를 상징하는 이름인 일정교(日淨橋->)로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교각 기단부

일정교는 한때 효불효교(孝不孝橋), 칠성교(七星橋)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름은 다분히 유교적 관념 아래서 생겨난 것으로,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효불효교(孝不孝橋)는 부의 동쪽 6리에 있다. 세간에 전하기를, 신라 때에 아들 7형제를 둔 과부가 있었는데, 그가 사통(私通)하는 남자가 물의 남쪽에 있었으므로 그의 아들들이 잠들기를 엿보아서 가곤 하였다. 그 아들들이 서로 말하기를, "어머니가 밤에 물을 건너다니니 자식이 된 자의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가."하고, 드디어 돌다리를 놓으니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겨 행실을 고쳤다. 그때의 사람들이 그 다리를
효불효교(孝不孝橋)라 불렀다 한다.

이 다리는 살아 있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효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불효이므로 효불효교라 하였습니다.
일곱 아들이 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칠성교라고도 하였습니다.

- 일정교터 발굴 전경

일정교는 동·서편 교대(橋臺, 다리의 양쪽 끝을 받치는 부분)와 날개벽, 3개소의 주형(舟形) 교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길이는 최소 55m이고, 너비는 최소 12m이며, 높이는 5m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려 명종 때의 사람인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반월성 남쪽 토끼고개 주변에 무지개 다리가 엎어져 문천(蚊川)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라고 하였으니, 다리의 형태는 아치 모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 일정교터

일정교와 월정교는 마치 형제처럼 서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 교각의 모양과 크기, 축조방법뿐만 아니라 석재의 색깔과 재질 등에 있어서도 서로 비슷합니다.


이 두 다리는 그 위치를 보아 일정교는 남산과 경주 남쪽 외지를 연결하였고, 월정교는 신라왕경 서쪽 지역의 주된 교통로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 일정교터에는 다리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져 없어졌고 그 흔적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설혹
다리를 복원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리 동쪽으로 경주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어 더는 나아갈 길이 없어졌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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