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게 내린 후에야 찾은 진전사터

- 진전사터 삼층석탑
강원도 양양에 있는 진전사터(陳田寺址)를 언젠가는 꼭 한 번은 찾아가리라 마음먹은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하루 만에 차로 다녀오기가 어려워 계속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일이 그렇듯 마음만 있으면 언젠가 기회는 생기는 법..., 생각지도 않게 그곳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어쩌다 2박 3일로 처가 식구들과 함께 강원도 대관령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진전사터를 찾아갈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다만, 문제는 모든 사람이 절터를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생각대로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곳까지 갔는데 선림원터와 진전사터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2박 3일 가운데 두 번째 날이 선림원터와 진전사터를 갈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전에 골프 일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가더라도 오후 늦게나 가능한 데, 11월 초 낮의 길이를 고려하면 두 곳을 다녀오기엔 너무 빠듯하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고민 중이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비가 와서 골프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덕분에 오전에는 강릉을 들러보고, 오후에 선림원터와 진전사터를 찾아가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 진전사터 삼층석탑
오전까지는 별 차질없이 생각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차질이 생겼습니다. 점심을 양양 쪽으로 올라가면서 간단하게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처가 식구들이 바닷가에 왔으니 생선회를 꼭 먹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어요.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선회를 먹으려 주문진시장 쪽으로 들어가니 차가 엄청나게 막혔습니다. 가까스로 횟집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나니 예정보다 1시간가량 늦어졌습니다.
점심시간이 생각 외로 길어진 탓에 선림원터에 도착해 그곳을 들러보고 나니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전사터를 찾아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어둠이 깔려 탑과 부도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없어도 희미한 모습만이라도 보고 싶었습니다. 진전사터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습니다. 더군다나 비까지 내리니 어둠은 더했습니다.
탑과 부도는 짙은 어둠 속에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참 무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어둠 속의 탑과 부도를 가지고 간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그렇게 몇 장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사진이 지금의 사진입니다.

- 진전사터 삼층석탑의 1층 몸돌
우리나라 선종의 싹을 틔운 진전사(陳田寺}는 도의선사가 창건하였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이 14세 때 이 절에서 출가하였습니다. 지금 이곳 진전사터(陳田寺址)에는 절은 없어지고, 삼층석탑(국보 제122호)과 부도(보물 제439호)만이 남아 있습니다.
도의선사는 당나라에서 마조 도일의 선법을 이어받은 서당 지장(709~788)에게 공부하고 귀국하여 당시 교종 불교가 절대적이었던 신라 불교에 선종을 처음으로 소개했습니다. '중국에 달마가 있었다면 신라에는 도의가 있었다.'라고까지 말하는 도의선사는 우리나라 선종 불교의 1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의선사의 법맥을 염거화상과 보조선사(804~880)가 이어받아 현재 한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였습니다.
진전사가 언제 폐사된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조선왕조의 폐불정책으로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절이 폐사될 때 스님들이 진전사터 위에 있는 연못에 범종과 불상을 던져 수장하고 떠났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진전사터 삼층석탑은 그 높이가 5m로 고만고만한 크기입니다. 기단부에 비천상과 팔부신중상이, 그리고 1층 몸돌에 사방불이 돋을새김이 되어 있습니다. 비록 비를 맞으며 어둠 속에서 보았지만, 그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 진전사터 부도
진전사터 삼층석탑에서 산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최근에 지은 절이 있고, 그 곁 숲 속에 도의선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가 있습니다.
높이가 3.17m인 이 부도는 우리나라 부도의 효시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일반 부도와는 판이합니다. 부도와 석탑 양식을 반반씩 섞어 놓은 모습입니다. 석탑의 이층기단부와 같은 양식의 받침대에 팔각의 몸돌을 얹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팔각의 몸돌을 얹기 전에 연꽃을 새긴 괴임석을 따로 받쳐 놓았습니다.
부도가 있는 숲 속은 칠흑같이 어두웠습니다. 플래시를 터뜨려 겨우 한 장의 사진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