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왕릉의 석인상
- 성덕왕릉 석인상
신라 왕릉 석인상의 진수를 보는
듯한 석인상 1쌍이 성덕왕릉에 있습니다. 하나는 완전하지만, 다른 하나는 깨어져 일부만
남았습니다.
석인상은 괘릉 문인상으로 알려진 석인상과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머리에 관을 쓰고, 관복을 입고, 소맷자락 속에 두 손을 모은 채 서 있습니다. 그래서 문인상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석인상이 무인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관복 속에 쥔 것이 문인들이
지니는 홀(笏)이 아니라 무인들이 쓰는 긴 칼이라는 점을 꼽았습니다.
- 괘릉 석인상의 머리
부분
괘릉 석인상의 머리에 쓴 관의 앞면 가운데에 무엇인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이것이 매미라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3D 스캔으로 살펴본 결과 매미가 아니라
벌(蜂)이라고 합니다.
성덕왕릉 석인상의
머리에 쓴
관에도 장식이 있는데, 이것 또한 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이 벌은 무엇을 뜻할까요?
7세기 초반 당나라에서 구양순 등이 편찬한
<예문유취(藝文類聚)>에서 인용한 <춘추담잠파(春秋潭潛巴)>라는 문헌에 "조정에 대봉무사(大蜂武士)와 중봉적강(中蜂赤强),
흑불량(黑不梁)이 있다."면서 "벌에는 독침이 있는데, 이것으로 위험을 막으니 이런 까닭에 (벌이란 곤충은) 무사의 상징이다."라고
했습니다.
- 옆모습
석인상은
대수장포(大袖長袍)라는 큰 소매를 가진 긴 도포 차림을 하였습니다. 이런 큰 소매는 갑옷을 입은 이곳 십이지상에서도 볼 수 있는데, 무인의 옷차림이라고 합니다.
- 뒷모습
뒷모습입니다.
갑옷을 입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석인상이 무인상이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 또 다른 석인상
또 다른 석인상입니다. 깨어져 가슴 위로만 남았는데, 그나마 이마저도 그 형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원래 모습은 앞서 언급한 석인상과 거의 같았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