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사 적인선사 부도
- 배알문
태안사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북쪽 언덕에 흙담장으로 둘러싸인 곳이 있습니다. 이곳 높직한 돌계단을 딛고 올라선 후 배알문을 들어서면 부도와 부도비가
있습니다.
- 적인선사
부도
이곳에 있는 부도는 적인선사 부도입니다. 정식 이름은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입니다.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慧徹)은
동리산문의 개산조입니다. 그는 당나라 지장선사(智藏禪師)로부터 법을 전수받았는데, 지장선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은 제자가 넷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셋이 신라 사람으로, 가지산문의 도의(道義), 실상산문의 홍척(洪陟), 그리고 바로 동리산문의 혜철입니다.
- 적인선사
부도
부도는 보존상태가 좋아서 상륜부까지 모두 남아 있습니다.
부도의 생김새는 조금 넓적해서 그렇지 광자대사 부도와 매우 비슷합니다. 적인선사 부도가 먼저 만들어졌으니, 적인선사 부도를 본떠 광자대사 부도가
만들어졌습니다.
- 하대석
하대석에
먼저 눈길이 갑니다.
하대석 하단부에 1단의 받침이 있고, 옆면 각 면에 1쌍식 가늘고 긴 안상무늬가 있습니다. 그 위의 면석에
면마다 사자상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는데, 그 모습이 볼만합니다. 자세가 제각각이며 생동감이 넘칩니다.
- 하대석의 사자상
여러 사자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자의 모습이 천년 세월을 훨씬 넘긴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생생합니다.
- 중대석과 상대석
중대석에는 면마다 안상무늬가 하나씩 있습니다. 상대석에는 단엽의 앙련이
3중으로 있는데, 아래쪽은 1열로 되어 있고, 그 위쪽은 서로 겹쳐 있습니다. 연꽃잎 하나마다 가운데에 종선(縱線)이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습니다.
- 몸돌받침과 몸돌
몸돌받침은 제법 두툼합니다. 옆면에 안상무늬가 1쌍식 있고, 그 위는
갑석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곳 아랫면에는 부연과도 같은 낮은 1단 받침이 있고, 윗면에는 3단의 각호각형 받침이 있습니다. 이 3단 받침의 가운데 받침에 연꽃무늬가 화사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몸돌 앞뒤 면에는 문비장식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양
옆면에는 사천왕상이 있고, 나머지 면에도 무언가가 새겨져 있는데, 무엇인지는 잘 알아볼 수 없습니다.
- 탑신부와 상륜부
지붕돌은 넓은 편입니다. 지붕돌 아랫면에는
2중의
서까래가, 윗면 낙수면에는 우동과 그 사이의 기왓골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상륜부에는 앙화, 보륜, 보주 등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습니다.
- 적인선사 부도비
부도와 부도비는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00m 정도 떨어진 오른쪽 산등성이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적인선사
부도비에 의하면, 적인선사는 당나라 지장선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아 귀국한 후 이곳 동리산(桐裏山) 대안암(大安庵, 지금의 태안사)에
머물면서 동리산문을 열었습니다. 경문왕 1년(861년) 2월 6일에
77세로 입적하여 8일에 절의 송봉(松峰)에 안치하고 돌을 세워 부도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부도는 부도비에 언급된 그 부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불과 이틀 만에 지금의 부도를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의 부도는 경문왕
12년(872년)에 부도비와 함께 조성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