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가곡리 오층석탑
- 곡성 가곡리 오층석탑
곡성
가곡리(柯谷里)는 마을 주위의 산세가 낄 개(介)자 형태와 닮았다고 하여 '개동(介洞)'이라 하였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가실(柯室)'이라고도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 때 '응곡(鷹谷)'과 합해지면서 가곡리로 되었습니다.
이 마을 뒤쪽에 절터가 있습니다.
이곳에 있었던 절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예전에 이곳에 개사(介寺)라는 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절이 있는 곳이 조선 8대 명당 가운데 하나라고 할 정도로 터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령신씨 가문에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절에서 심부름하던 동자를 매수했습니다. 어느 날 마을에서 초랑이패 굿을 할 때 절에서 동자만 남겨두고 모두 마을로 굿
구경을 갔습니다. 이때 동자가 불을 질러 절을 태워버렸습니다. 그 후 고령신씨 가문에서 절을 인수하여 그 자리에 고령신씨 선대 묘를 모셨고, 그
후로 신숙주, 신말주, 신용개, 이렇게 세 정승이 나왔다고 합니다.
- 가곡리 오층석탑
지금에 와서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곳에 고령신씨
제각이 들어서 있고, 절은 없어져 석탑 하나만 남았습니다.
탑은 2층 기단에 5층 탑신부와 상륜부로 되어 있습니다. 높이가
6.2m로, 꽤 큰 편입니다. 전체적으로 고준한 느낌을 주며,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 기단부
지대석은 땅속에 있어 그 형태를 알 수 없습니다.
하층기단에는 면석에 모서리기둥과
가운데기둥이 생략되었고, 하대갑석 아랫면에 1단의 낮은 각형 부연이 있습니다. 그 윗면에는 별석으로 된 2단의 두툼한 받침이 있습니다.
상층기단 면석에는 모서리기둥이 있고, 상대갑석 아랫면에 1단의 낮은 각형 부연이
있습니다.
- 상대갑석의 몸돌 받침
상대갑석 윗면에 1단의 1층 몸돌 받침이 있습니다. 이 받침의 윗면에 홈이 있어 이곳에
1층 몸돌이 끼워져
있습니다.
- 탑신부
탑신부 몸돌 면석에는 모서리기둥이 있습니다. 그리고
2~5층의 몸돌 남쪽 면에 장방형 홈이 있어 감실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지붕돌 낙수면의 경사는 비교적 완만하며, 전각에서 반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붕돌 합각선에 두툼한 우동이 있습니다. 이것은
백제탑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지붕돌 아랫면의 층급받침은
1~4층에서는 3단이지만, 5층에서는 2단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1~4층 지붕돌의 층급받침에서
가운데 단이
위아래 단과는 달리
둥그렇게 모를 죽인 형태를 하였습니다. 이것도 백제탑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 탑신부
각 층의 지붕돌 위에 별석으로 된 두툼한 몸돌 받침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이곳 지붕돌을 보다 보니
문득 경주
정혜사터 십삼층석탑의 1층 지붕돌이 떠오릅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서로 비슷해 보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어떤 관계라도 있는 걸까요?
- 가곡리 오층석탑
전체적으로 탑은 담양 읍내리 오층석탑과 닮았습니다. 탑신부에 비해 낮은 기단부와 지붕돌의 양식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정림사터 오층석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제가 망한 후에도 그 문화는 이 땅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옛 백제땅에서
백제의 문화가 이렇게 꽃피우고 있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