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공덕동 삼층석탑
- 영천 공덕동 삼층석탑
영천 공덕마을은 기룡산에서 발원한 작은 내가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으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더는
오갈 데 없는 산골 마을입니다.
'공덕(公德)'이란 마을 이름은 고려말 어느 스님이 이곳에
공덕사(公德寺)란 절을 짓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그 후 절은 없어졌으나, 그 흔적은 이렇게 마을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이런 이야기를 증명하듯 탑이 하나 있습니다.
공덕마을을 지나서 골짜기 안을 들어가면, 골짜기 깊숙한 곳에 탑골못이 있습니다. 이 못 바로 위
언덕바지에 탑이 있습니다. 공덕동 삼층석탑이라고 하는 작고 보잘것없는 탑입니다.
- 영천 공덕동 삼층석탑
사방에 봄기운이 완연한 봄날, 이 탑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2년 전 이 탑을 찾으려 공덕마을까지 왔다가, 날이
저물어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섰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아쉬움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영천 하면 그때의 아쉬움이 떠올랐고,
끝내 다시 이곳으로 발길을 향하게 했습니다.
- 영천 공덕동 삼층석탑
그동안 탑에는 우여곡절이 좀 있었습니다. 이곳에 있던 공덕사라는 절이 없어진 후 서씨 문중의
송계정사(松溪精舍)로
옮겨졌다가 1973년에 동리 입구로 옮겨졌고, 1974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처음 탑을 서씨 문중의 송계정사로 옮긴 것은
외진 곳에 있어 관리하기에 불편하다고 하여 그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탑을
옮긴 후 흉사가 자주 발생하였고, 그러자 공덕마을 입구로 옮겼습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의 원성이 일어났고, 그래서 또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돌고 돌아 탑은 지금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영천 공덕동 삼층석탑
탑은 고려시대 석탑이고, 크기는 사람 키만
합니다. 그야말로 자그마한 탑입니다. 단층기단에 3층 탑신을 올렸습니다.
지대석은 2매의 판석으로 되어 있고, 윗면에 1단 받침을
두었습니다. 지금 기단 면석은 보이지 않고, 갑석만 있습니다. 갑석은 아랫면에 부연을 두었고, 윗면에는 1단 받침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얇은
갑석 아래 부연이 비교적 두터워 지대석의 받침과 함께 마치 낮은 면석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기단 면석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어느 때에 없어진 것일까요?
- 공덕동 삼층석탑의 지금 모습과 옛 모습
일부 탑재가 도난당하기 전의 옛 모습을 보면, 탑은
기단부, 3층 탑신부, 상륜부까지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1999년에 3층 몸돌 윗부분을 도난당해 지금은 2층까지만 남았습니다.
몸돌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4단이고, 낙수면은 비교적 가파르며, 윗면에 1단 받침을
두었습니다.
- 영천 공덕동 삼층석탑
한때 정처 없이 떠돌던 탑은 이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못을 앞에 두고 뒤로는 깊은 골짜기를 등진 채 밭
한쪽 구석에 서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손길로부터도 멀어졌습니다. 그 때문인지 탑 일부를 도난당해 원래의 모습도 잃었습니다.
외진 곳에 있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 탑을 찾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곳 밭은 이제 농사 준비를 마친 듯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탑은 덜 외로울 것입니다. 밭일하는 사람도 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도 벗이 되어줄 것이며, 어쩌다 한 번씩 이 탑을 기억하곤 찾아주는 길손 또한 없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