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사터 쌍탑
- 염불사터 쌍탑
남산 칠불암 가는 등산로 길목에 쑥두듬골(蓬丘谷)이 있습니다.
이곳에 옛 절터가 있는데, 신라시대에 염불사(念佛寺)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염불사에 대해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산(南山) 동쪽 산기슭에 피리촌(避里村)이 있고, 그 마을에 절이
있는데 피리사(避里寺)라 했다. 그 절에 이상한 중이 있었는데 성명은 말하지 않았다. 항상 아미타불을 외어 그 소리가 성(城) 안에까지 들려서
360방(坊) 17만호(萬戶)에서 그 소리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소리는 높고 낮음이 없이 낭랑하기 한결같았다. 이로써 그를 이상히 여겨
공경치 않는 이가 없었고, 모두 그를 염불사(念佛師)라 불렀다. 그가 죽은 뒤에 소상(塑像)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 안에 모시고 그가 본래
살던 피리사를 염불사(念佛寺)로 이름을 고쳤다.
이 절 옆에 또 절이 있는데
이름을 양피사(讓避寺)라 했으니 마을 이름을 따서 얻은 이름이다.
- 동탑
염불사터에는
최근에 복원된
쌍탑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동탑은 이전에는 '구정동 삼층석탑'이라고 불렀던 탑입니다.
1963년 5·16 군사 쿠데타
뒤 경주에 내려온 군인 출신 시장은 대통령 박정희의 경주 순시 소식을 듣고는 불국사 들머리 장터에 기념물로 탑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염불사터에 흩어져 있던 동탑의 부재들을 모아 탑을 세우기로 했는데, 이 부재만으로는 탑을 완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도지동
이거사터(移車寺址)에 있는 폐탑 부재 일부를 갖고 와 탑을 완성했습니다. 그 탑이 구정동 삼층석탑입니다.
구정동
삼층석탑은 전체적인 균형감뿐만 아니라 비례도 맞지 않아 어색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그리하여 구정동 삼층석탑을 염불사터에 본래의 모습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어져 오다가, 약 4년 전에 구정동 삼층석탑이 해체되어 염불사터에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이때 석탑 부재만 남아있던 서탑도 함께 복원되었습니다.
- 서탑
염불사터의 쌍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두 탑이 거의 같은 형태입니다. 탑은 2층 기단에 3층 탑신부와 상륜부로 되어 있습니다. 변화나 일탈을 꿈꾸지 않는
성실한 모범생과도 같은 탑입니다.
- 탑신부
하층기단 면석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과 2개의 가운데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대갑석 윗면에는 2단 호각형 받침을 두어 상층기단 면석을 받치고 있습니다. 상층기단 면석에도 면마다 모서리기둥과 2개의 가운데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대갑석 아랫면에는 부연을 두었고, 윗면에는 2단 각형 받침을 두어 1층 몸돌을 받치고 있습니다.
탑신부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몸돌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외 다른 장식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단순함
속에 멋이 있습니다.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5단입니다. 낙수면은 완만하며, 전각에서 위로 약간 들려 있습니다. 상륜부에는 최근 것으로 보이는
노반이 놓여 있습니다.
- 염불사터 쌍탑
염불사터 쌍탑 가운데 서탑은 동탑보다 더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단부 대부분과 1층 몸돌을 새로 해
넣었고, 지붕돌과 나머지 몸돌도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게 없습니다. 그야말로 상처뿐인 탑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동탑만 둘러보곤
서탑을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립니다. 그런 안타까움 때문일까요?
나도 모르게 동탑보다는 서탑 주위를 더 오래 서성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