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조선고적도보>로 우리 문화재 살펴보기(10): 칠불암 마애석불

sky_lover_ 2013. 2. 1. 08:21

- 칠불암 마애석불의 삼존불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7년 출판)

주 남산의 여러 골짜기 가운데서도 봉화골은 깊은 골짜기입니다. 그곳 끝자락에 칠불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고, 그곳에 칠불암 마애석불이 있습니다.

봉화골은 칠불암 동남쪽에 있는 봉화대봉(烽火臺峰)에 봉화대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칠불암(七佛庵)은 이곳 바위에 일곱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칠불암이란 이름은 근래에 붙여진 것으로, 신라시대 때의 절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조선고적도보>에서도 칠불암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고 그냥 남산마애불상(南山磨崖佛像)이라고만 했습니다.

<조선고적도보> 사진과 지금 모습을 비교해보면, 칠불암 마애석불은 그동안 비교적 잘 보존되었습니다. 1000년을 훨씬 넘는 세월도 무사히 지내왔는데 그깟 최근 100년 남짓 무사한 것이 뭐 대수이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10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사라졌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무사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요? 

- 칠불암 마애석불의 삼존불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은 석가여래불, 좌우 협시보살은 관음보살과 다라보살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본존불을 아미타불, 좌우 협시보살을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보기도 합니다.

본존불은
우견편단(右肩編袒)에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겹으로 핀 넓은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습니다. 연꽃무늬가 무척 사실적이어서 마치 만발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듯합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에는 코가 파손되어 있는데, 지금은 시멘트로 보수되었습니다.

본존불 오른쪽 협시보살은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드리우고 감로병을 쥐었으며, 왼손은 팔꿈치를 굽혀 어깨높이로 들고 있습니다. 한편 본존불 왼쪽 협시보살은 오른손에 연꽃을 들었고, 왼손은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 들고 있습니다.


- 칠불암 마애석불의 사면불 가운데 남면 여래상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7년 출판)

삼존불 앞에 있는 사면불 가운데 남면 여래상의 모습입니다. 그 옆으로 서면 여래상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입니다. 이 사진만 보아도 당시 절터는 폐허로 변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면 여래상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습니다. 흘러내린 옷자락 속에 발은 감추어져 보이지 않고, 수인은 설법인을 하였습니다. 소발의 머리 위에 육계가 단정히 솟아 있고, 두광은 무늬가 없는 보주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 칠불암 마애석불의 사면불 가운데 남면 여래상

사면불의 여래상은 모두 연화좌에 보주형 두광을 갖추고, 결가부좌하였습니다. 이들 여래상의 명칭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동면 여래상은 왼손에는 약합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로 보입니다. 따라서 서면 여래상은 아미타여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면불은 사방 정토(淨土)에 살면서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방위불로, 경전이나 종파에 따라 그 명칭이 달라져 헷갈리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동쪽 면에 약사불, 남쪽 면에 미륵불, 서쪽 면에 아미타불, 북쪽 면에 석가모니불을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