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루의 현판
- 교남명루(왼쪽), 영남루(가운데), 강좌웅부(오른쪽)
영남루는 신라시대 창건된 영남사란 절이 들어섰던 곳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공민왕
14년(1365년)에 처음 지어진 이후로 조선시대에 들어와 넓혀 짓고 화재를 만나 훼손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헌종 10년(1844년)에
다시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남루에는 여러 현판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끕니다.
먼저 영남루 정면에 '영남루'와 좌우로 '교남명루'와 '강좌웅부'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영남루'(嶺南樓)란 현판은 송하(松下)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이 쓴 것이라고
합니다. 무신년(戊申年)에 썼다고 되어 있으니
1788년에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남명루'(嶠南名樓)와 '강좌웅부'(江左雄府)란 글씨는
귤산(橘山)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쓴 것입니다. '교남명루'는 문경새재
이남의 이름 높은 누각이란 뜻인데, 교남지방이란 경상남북도를 통틀어 말합니다.
그리고 '강좌웅부'는 낙동강 왼쪽의 아름다운 고을이란 뜻입니다.
- 영남제일루(위쪽), 용금루(가운데), 강성여화(아래쪽)
영남루 내부에도 현판들이 여기저기에 걸려 있습니다.
이들 현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 쓴 현판입니다. 이 현판은 계묘년(癸卯年, 1843년) 여름에 당시 밀양부사
이인재(李寅在)의 맏아들 이증석이 썼다고
합니다. 그때 나이가 11살이라는군요.
'용금루(湧金樓)'는 높은 절벽에 우뚝 솟아 있는 아름다운 누각이란 뜻이고,
'강성여화'(江城如畵)는 강과 밀양읍성이 한데 어울려 마치 그림과 같다는 뜻입니다.
- 영남루(위쪽), 현창관(아래쪽)
영남루 내부에 걸려 있는 '영남루'(嶺南樓)란 쓴 현판 역시 유명합니다. 제가 볼 때마다
놀랍다고 느끼는 현판입니다.
이 현판은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란 현판을 쓴 이증석의 동생인
이현석이
계묘년(癸卯年, 1843년) 여름에 썼다고 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7살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이
쉽게 믿어지십니까?
'현창관'(顯敞觀)은
제가 좋아하는 현판입니다.
병인년(丙寅年) 5월에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1866년에 쓴 것이 아닌가 싶네요.
글의 뜻은 영남루에 오르니 사방이 높고 넓게 보인다고 해석하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