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거수

울산 방어동 용송

sky_lover_ 2024. 1. 2. 10:17

- 방어동 용송

 

울산시 동구 남쪽 지역에 방어동(方魚洞)이 있습니다.

 

방어동은 방어(魴魚)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 그 음을 따서 지명이 만들어졌다가 간편 한자인 방어(方魚)로 바뀌었다는 설과 고려 때 울주(蔚州) 바닷가에 방어진(防禦鎭)을 설치하였는데, 그때의 방어진 이름을 따서 한자의 음이 같은 방어로 지명이 변하게 되었다는 2가지 설이 있습니다.

이곳은 1900년 초부터 일본 세토(瀨戶) 내해 주변의 어부들이 방어진으로 이주하여 방어진 항구 주변에 일본인 이주 어촌을 형성하고 일제강점기 지배 세력으로 존재하면서 방어진의 자연환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방어진 만에는 선박의 접안 시설과 방파제 등을 축조하고 시가지를 건설하면서 안전시설과 문화시설 등을 일본식으로 꾸몄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일본 사람들이 떠난 방어진항과 일본인 주거지는 한국인이 접수하였습니다. 빈 항구에는 포경업(고래잡이)으로 채워졌으나 곧 사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980년대 초부터 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소 등의 활황으로 꽃바위 지역이 택지로 개발되어 구도심의 문화가 꽃바위 신시가지로 이동하였습니다.

 

- 방어동 용송

 

방어진항 서쪽 바닷가에 용왕사(龍王寺)가 있습니다. 용왕사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용송(龍松)'으로 불리는 곰솔 한 그루가 있습니다.

 

- 방어동 용송

 

용송은 나라의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용송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이곳  동굴에 살던 용이 천 년이 되는 날 삼월삼짇날 이른 새벽에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옥황상제에게 여의주를 바쳤다고 합니다. 이를 기특히 여긴 옥황상제는 용이 승천한 곳에 솔 씨를 내려보내 심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 방어동 용송

 

용송은 어른 허벅지보다도 굵은 가지를 지지대가 받치고 있습니다.

'ㄹ'자 모양으로 왼쪽으로 뿔을 단 용의 머리, 오른쪽으로는 용의 꼬리가 연상되는 모습이 용을 닮았다고 하여 '용송(龍松)'이라고 합니다.

 

- 방어동 용송

 

용송은 수십 년간 용왕사 제당(용왕당)에 가려 반밖에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용왕당이 철거되어 제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용왕당은 일제강점기 때 어민들의 무사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지어져 용왕신과 산신을 모신 제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용송이 보호수 지정된 후 용왕당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용왕당을 철거하고 작은 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 방어동 용송

 

수령: 약 500년. 높이: 7.5m. 가슴높이 둘레: 4.5m.
소재지: 울산시 동구 방어동 328.

 

(202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