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삼양리 소나무

- 삼양리 소나무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三陽里)는 밀양의 동북쪽 끝에 있습니다.
동쪽에는 가지산(迦智山)의 봉우리를 기점으로 석남재(석남령(石南嶺)), 능동산(陵洞山), 재약산(載藥山)으로 이어지는 고산준령이 울주군(蔚州郡) 상북면(上北面)과 군계(郡界)를 지었고, 서쪽으로는 운문산(雲門山)과 정승령(政丞嶺)이 남북으로 접근하는 골짜기를 경계로 원서리(院西里)와 이웃하였습니다. 북쪽에는 가지산(迦智山)이 아랫재를 거쳐 운문산(雲門山)과 연결되는 준령이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도계(道界)를 지었고, 남쪽에는 석남재에서 흘러내리는 산내천(山內川)의 상류를 사이에 두고 남명리(南明里)와 접하고 있습니다.
삼양리는 16세기 초의 실혜촌(實惠村)과 천화리(穿火里)라는 방리(坊里)로서, 인접한 남명리(南明里)와 함께 19세기 초까지는 산내면(山內面)의 원래 지명인 천화면(穿火面) 또는 천화산내면(穿火山內面)의 사실상 중심 지역이었습니다.
옛날 실혜촌(實惠村)의 위치는 지금의 남명리(南明里) 마전(馬田) 부락을 포함하여 상(上), 중(中), 하(下) 세 땀으로 이루어진 삼양리(三陽里) 일대인데, 실혜산(實惠山)의 아랫마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입니다. 실혜산(實惠山)은 현재 이른바 영남알프스의 주봉(主峰)인 가지산(迦智山)을 말하며, 화산(火山)의 분화구임을 나타내는 천화산(穿火山), 석면산(石眠山), 석남산(石南山)으로도 불리는 명산입니다.

- 삼양리 소나무
<밀주지(密州誌)>의 기록에 실혜촌(實惠村)은 본래 부요(富饒)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이 모두 윤택하였고, 큰 부자가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후 실혜(實惠)는 다시 시례(詩禮) 또는 시잠(詩岑)으로 표기되었고, 근대에 이르러 남쪽의 남명리(南明里)와 함께 양지리(陽地里)와 음지리(陰地里)로 구분되었습니다. 1914년 행정구역 조정 시에는 중양(中陽), 상양(上陽), 하양(下陽)으로 나누어진 세 땀을 합쳐 삼양리(三陽里)로서 법정리로 삼았으며, 1965년에 부락의 행정단위를 다시 세 개로 나누었습니다. 일동(一洞)은 중양(中陽, 깻들, 임평(荏坪))이고, 이동(二洞)은 하양(下陽, 함화촌(含花村))이며, 삼동(三洞)은 상양(上陽, 당산촌(堂山村))과 중촌(中村, 구연(臼淵))입니다.
이곳에는 화산(火山) 분화구 지대의 명산(名山)과 청류(淸流) 반석(盤石)이 많아 시례호박소, 백운산계곡, 오천평반석(五千坪盤石) 등 이름 있는 경승지가 있으며, 언양과 연결되는 24번 국도로 가지산 도립공원의 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옛날부터 산채(山菜), 산과(山果), 각종 약재, 석용(石茸), 벌꿀 등의 토산품으로 유명하며, 지금은 얼음골 사과로 유명합니다.

- 삼양리 소나무
삼양리 상양(上陽) 마을 길가에 노거수 소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삼양리 소나무입니다.
상양(上陽)은 하양(下陽)의 동남쪽, 중양(中陽)의 북쪽에 있는 백운산 기슭의 마을입니다. 옛날 실혜촌(實惠村) 곧 양지리(陽地里)의 본방(本坊)으로서 웃양지, 상양지(上陽地), 산양이라고도 하며, 마을 안에 당산목이 있어서 당산촌(堂山村)이라고 합니다. 시례호박소가 있는 중마(중촌(中村))과 함께 삼양리(三陽里) 삼동(三洞)에 속하는 마을입니다.

- 삼양리 소나무
삼양리 소나무는 용이 승천하듯 줄기가 하늘을 향해 구불구불하게 뻗었습니다.

- 삼양리 소나무
소나무 가지마다 솔방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 삼양리 소나무
소나무에서 멀리 마주 보이는 산이 있습니다. 천황산(天皇山)입니다.

- 삼양리 소나무
소나무 주위는 온통 사과나무밭입니다.
사과나무는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가지마다 사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산된 사과는 이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얼음골 사과입니다.

- 삼양리 소나무
수령: 300년.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2.5m.
소재지: 밀양시 산내면 삼양리 805-2.
(2023.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