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언의 <북궐조무도>
강희언, 북궐조무도
종이, 세로 26.5cm, 가로 21.5cm, 국박 소장품번호 건희 3917
조선 후기 화가 강희언(姜熙彦, 1738~1784 이전)이 그린 <북궐조무도(北闕朝霧圖)>입니다. 이 그림에서 거리 정면에 있는 건물은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이고, 그 뒤로 창덕궁이 있습니다.
그림 한쪽에 쓴 화제 '북궐조무(北闕朝霧)'는 '북궐의 새벽안개'라는 뜻입니다. 북궐(北闕)은 창덕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북궐조무도>는 새벽안개 자욱한 창덕궁 앞 거리 모습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강희언이 이른 새벽 창덕궁 앞 거리에 나가 거리 모습을 직접 보고 그렸습니다. 조선 시대 화가로서는 매우 선구적인 시도였습니다.
그림은 새벽안개 가득한 창덕궁 앞 거리 모습을 원근법으로 그렸습니다. 우리 전통 미술에서는 실제로는 좁아지지 않음에도 좁아 보이는 착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오히려 뒤쪽을 넓게 표현하는 역원근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회화적 전통을 염두에 둔다면 수묵 산수화에 서양식 원근법을 적용한 <북궐조무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강희언과 교류가 두터웠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은 <북궐조무도>를 보고 나서 그림 옆 빈칸에 다음 같은 화평을 남겼습니다.
(화가가) 새벽녘(五更)에 파루(罷漏) 치기를 기다리다가 신발에 서리가 가득 차게 되었다니 나로서야 어찌 이 그림의 묘미를 알겠는가? 표암(豹菴)
* 파루(罷漏): 조선 시대에 5경(更) 3점(點) 말이 되면 쇠북을 33번 쳐서 도성 안의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음을 알리던 것.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김홍도의 스승으로 당시 예술계를 이끌었던 분입니다. 그가 그림 옆 빈칸에 남긴 화평을 미루어 보아 강희언이 새벽안개 자욱한 창덕궁 앞 거리 풍경을 그리기 위해 이른 시간에 실제 장소에서 기다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희언은 조선 후기 새롭게 유입된 원근법을 접한 후 특유의 호기심으로 이것을 조선 상황에 맞게 그려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를 성공적으로 풀어낸 것이 <북궐조무도>입니다.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이 그림은 조선 후기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뛰어난 작품이 탄생할 수 있게 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북궐조무도>에서의 몽환적인 안개는 최산두(崔山斗, 1483~1536)의 시 하나를 떠오르게 합니다. 최산두는 문장이 뛰어나 호남삼걸(湖南三傑)이라는 칭호를 받은 조선 전기 문인입니다.
밥 짓는 연기(炊煙) - 최산두(崔山斗)
강남에 아침저녁 연기 태평도 하여라
연기는 가늘어 아낙에게 다정하게 머물고
때때로 비를 따라 앞산을 넘어가면
모든 티끌 씻어내어 맑은 기운뿐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