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오량성
- 거제 오량성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지나 2km쯤 들어가면 오른쪽 들판에 성벽이 보이고, 성벽 위에 아름드리나무가 있습니다. 거제 오량성(烏良城)입니다.
지금 성안에는 민가가 들어서 있고, 주위는 논밭입니다. 성벽의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지만, 동쪽과 남쪽은 많이 무너졌습니다.
- 오량성
14번 국도에서 빠져나와 오량성에 닿으면 치성(치성7)과 서쪽 성벽이 보입니다.
- 오량성 도면
성의 둘레는 1,150m, 높이는 4m, 너비는 4.5m입니다.
사방에 성문지가 있고, 네모진 성벽의 모퉁이와 성문 주변에 성벽에 붙은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벽을 사각형으로 돌출되게 쌓은 치성 8곳이 있습니다. 성 밖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자(海子)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동문지와 서문지가 마을의 주 출입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치성7
<거제군지(巨濟郡誌)>에 "사등면 오량리에 있는데, 주위가 2,150척, 높이가 13척의 석축성으로, 조선 연산군 6년(1500년) 경신(庚申)에 보(堡: 흙과 돌로 쌓은 작은 성)를 설치하여 권관(權管)으로 진방(鎭防)케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곳은 보가 설치되기 전 역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보가 설치되면서 관방시설까지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오량성은 읍성이나 진성과는 달리 역참 기능과 성곽 기능을 함께 하였습니다.
- 서쪽 성벽
성 밖에서 바라본 치성7과 치성8 사이의 서쪽 성벽입니다.
성의 남쪽에 있는 우두봉에는 고려말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이곳으로 유배되어 온 의종이 축성하였다는 폐왕성(廢王城, 또는 둔덕기성(屯德岐城))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산기슭 절골에는 50여 년 전 밭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의 석불을 모신 신광사가 있습니다.
폐왕성은 산성이지만 그 축성법에서는 평지성인 오량성과 같습니다. 따라서 폐왕 의종이 맨 처음 거제로 피난 와서 오량성을 쌓고, 사태가 위급할 때 올라가서 지내기 위해 나중에 폐왕성을 쌓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폐왕 의종이 쌓은 것을 그 후 조선 연산군 때에 왜적으로부터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 수축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 치성7에서 서문지 쪽으로 바라본 서쪽 성벽
치성7에서 서문지 쪽으로 바라본 서쪽 성벽입니다.
- 북쪽 성벽
성 밖에서 바라본 북쪽 성벽입니다. 성벽 가운데쯤에 북문지가 있습니다.
- 동문지 쪽에서 바라본 치성3
동문지 주위 모습입니다. 동문지 성벽 위에서 바라본 치성3입니다.
- 치성3에서 치성2쪽으로 바라본 동쪽 성벽
치성3에서 치성2쪽으로 바라본 동쪽 성벽입니다.
- 치성3
성 밖에서 바라본 치성3입니다.
- 치성3과 동쪽 성벽
성 밖에서 바라본 치성3과 그리고 치성2 사이의 동쪽 성벽입니다.
- 동쪽 성벽
성 밖에서 치성4쪽으로 바라본 동쪽 성벽입니다.
- 동문지에서 바라본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
동문지에서 바라본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입니다. 치성4는 동쪽 성벽과 남쪽 성벽이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 남문지 주위 남쪽 성벽
성안 도로에서 바라본 남문지 주위 모습입니다.
- 서쪽 성벽
성안에서 바라본 치성6과 서문지 사이의 서쪽 성벽입니다.
- 느티나무
동문지와 서문지를 이어주는 도롯가에 키 큰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나무 수령은 300년이 되었고, 높이는 15m, 둘레는 3.4m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