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보성 계산리 삼층석탑

sky_lover_ 2020. 10. 10. 05:19

- 계산리 삼층석탑

계산리 삼층석탑(桂山里 三層石塔)은 처음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찾아가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탑은 계동(桂洞) 마을회관을 지나 탑생이골 안쪽에 있습니다. 큰 도로 입구에 안내판 하나만 덜렁 있을 뿐 마을에서 탑까지 안내 표시가 전혀 없습니다. 알고 찾아가는 경우가 아니면 헤매기에 십상입니다.

 

- 계산리 삼층석탑

 

우리나라 마을 어디든 나름대로 사연들이 있겠지만, 이곳 계동(桂洞)마을도 사연이 좀 있습니다.

 

1680년경에 광산김씨(光山金氏)가 이주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마을의 이름은 뒷산에 장등(긴등)이 있다 하여 장동이라 불렸는데, 폭우로 인해 매몰된 뒤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부락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때 부락명을 계동이라 하였습니다.

 

1947년 여순반란 사건으로 마을이 전소되자 많은 사람이 다른 지방으로 이주해 가고 일부 주민이 지금 위치에 생활 터전을 잡게 되어 부락을 형성하였습니다. 마을 주변의 형국이 반달형으로 둘러싸고 있다고 해서 월평(月坪)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계산리 삼층석탑

 

탑은 이층기단의 삼층석탑입니다. 

 

기단 일부가 없어지고, 3층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따로 떨어져 흩어져 있었는데, 1989년에 탑을 해체하면서 모두 수습하여 복원하였습니다.  

 

- 하층기단

 

하층기단은 4개의 돌을 바둑판처럼 짜서 맞추었습니다. 각각의 돌에 새겨진 가운데기둥이 가운데서 합쳐져 그 폭이 모서리기둥보다 조금 더 넓습니다.

 

-상층기단 갑석

 

상층기단은 4장의 돌을 사방에 세워 면석을 이루게 하고, 모서리마다 별도의 돌로 모서리기둥을 세웠습니다. 지금은 원래의 모서리기둥이 없어져 새로이 만들어 끼워 넣었습니다. 면석에서 가운데기둥은 생략되었습니다.

 

상층기단 갑석 아랫면의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부연이 있습니다. 상층기단 갑석 윗면에 2단 몸돌 받침이 있습니다.

 

- 탑신부

 

탑신부 몸돌에는 면석마다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의 아랫면에 4단의 층급받침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맨 아래의 층급받침이 다른 층급받침보다 얕은데, 위층 지붕돌로 갈수록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해집니다.

 

- 계산리 삼층석탑

 

계산리 삼층석탑은 상층기단 면석에 가운데기둥이 없고, 지붕돌 아랫면의 층급받침도 변형된 형태입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계산리 삼층석탑

 

탑은 계동마을 안쪽의 탑생이골에 있습니다. 탑생이골이란 지명도 이 탑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탑 앞쪽에는 다랑논이 있고, 뒤쪽은 산 능선입니다. 그래서인지 주위에 그다지 너른 땅이 없습니다. 탑이 있는 곳이 절터라면 절은 그다지 큰 절은 아니었을 것입니다.